日 經團連 "정당 정책 평가해 헌금 차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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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이 내년부터 각 정당의 정책을 평가, 성적표를 근거로 정치헌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키로 해 주목을 끌고 있다.

게이단렌이 10년 만에 정당에 대한 정치헌금 기부를 재개하면서 '정경유착'이란 비난을 피하고 헌금의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정치권에 대한 재계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다. 일본에선 개인.기업 등이 정당에 정치헌금을 내고 있지만 정책을 평가해 액수를 결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헌금 재개와 정당 평가=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21일 "게이단렌이 구조개혁.사회보장.세제개혁 등을 촉진하기 위해 산업.금융 재건, 경쟁력 기반 강화, 인재육성 등 7개 분야에서 총 74개 평가 항목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게이단렌은 9월께 최종 평가안을 확정해 각 정당을 평가한 후 내년 초 회원기업에 평가 결과를 제시할 예정이다.

기업은 각자의 규모.이익 등에다 평가 결과를 감안해 자발적으로 정당별 정치헌금을 정해 기부할 전망이다.

도요타자동차 회장인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게이단렌 회장은 지난 5월 "일본 경제는 비상사태인데 정치권이 개혁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경제계가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해 개혁을 앞당기기 위해 게이단렌의 정치헌금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헌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당 정책.실행력.결과 평가제도를 도입키로 하고 정경행동위원회를 설치했다.

재계 단체의 정치헌금은 '정경유착'이란 비난을 받다가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고 개혁을 내세운 호소카와(細川)내각이 집권하던 1993년 없어졌다.

기대.우려=일본에선 최근 각 정당에 대해 명확한 정책.시행일정을 담은 정책요강(매니페스토)을 제시하라는 사회.언론의 요구가 드높다. '뜬 구름 잡기식' '실현성 없는 인기영합형' 정책이나 공약을 내세우는 정당들에 대한 개혁 요구다.

니혼게이자이는 "게이단렌의 정책평가제는 각 정당의 개혁을 더욱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간접적으로 정치인 개인에 대한 평가도 이뤄져 정치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다른 이익단체들의 정치헌금 기부 방식에도 영향을 줘 일본 정계의 고질적인 '부정한 정치헌금 관행'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재계의 정치헌금 자체를 곱지 않게 보는 여론도 있고, 게이단렌의 평가기준에는 소비세 인상, 법인세 인하 등 재계에만 유리한 것들도 적지 않아 "정치가 돈에 휘둘릴 것"이란 우려도 있다. 여야 구분 평가 등 구체적인 평가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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