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집의 동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현관에 나서면 밖에서 놀고 있던 꼬마들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엄마들이 하는 인사를 본떠서 하는 것인지, 엄마들이 가르쳐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어쨌거나 즐겁고 흐뭇하지 않을수 없다. 내가 인사를 받아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웃으로서의 정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베란다 내걸이 빨랫줄에 난데없는 동태꾸러미가 철썩하고 떨어졌다. 깜짝놀라 쳐다보니 2층 아기엄마가 서 있다. 『주문진 시댁에 갔더니 주시더군요. 삐득삐득 말리느라고 줄에 꿰어서 밖에 걸었더니 떨어졌어요』하면서 어쩔줄 몰라한다. 베란다에 좀 떨어졌기로서니 미안할건 또 무언가. 그런데도 아기엄마는 굳이 동태 네마리를 떼어준다. 『왜 이래요, 정말.』 나는 동태를 아기엄마에게 밀어주거니 도로 밀려오거니 하며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동태를 손에 들고 문득 한가지 생각에 잠겼다. 지난여름 사돈댁에서 절편을 한상자 보내주셨다. 내가 살고 있는 현관안 아홉집과 옆 현관 열집중 세집을 골라 돌리고나니 식구들끼리 나눠먹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젠 됐겠지하며 한숨을 돌리던 차에 빼놓고 싶지않은 또한집 주부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남은 것을 놓고 자꾸만 마음속으로 재어보았다. 한접시만 남기고 한접시 가지고 갈까말까 궁리끝에 사돈댁에서 애써 해보낸 것을 헤프게해서는 안된다는 어설픈 자기변명을 해가며 그만두고 말았다.
그후 나는 줄곧 가슴속이 좋지않았다. 바로 그 주부는 교제가 빈번한 것은 아니지만 밖에서 만나면 언제나 먼저 인사를 해온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와서 처음 인사를 받은 주부이기도 하다. 반상회때 모이는 스무집중의 하나인 그 주부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상냥한 인사를 건네온다.
아, 내가 한접시 덜 먹었더라면 이렇게 후회스럽지 않을 것을…. <서울강남구개포동442동108호> 박초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