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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드] 한 달에 네 번, 그 아파트 주인은 바뀐다.1억 웃돈과 함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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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가락동 시영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송파 헬리오시티’ 아파트. 지난달 아파트 분양권 전매(轉買) 제한에서 풀리자마자 지금까지 250여 건이 거래됐다. 지난달에만 218건이 거래됐다. 서울 전체 아파트 분양권 거래량의 17%에 이르는 수치다.

분양권은 해당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것을 사고 파는 행위를 ‘전매’라고 하는데, 거래 물건은 분양계약서다. 전매 때 최초 계약자가 시공사(혹은 시행사)와 쓴 분양계약서가 오고 간다. 이 계약서가 이른바 ‘집문서’인 셈이다.

서울·경기는 물론 지방에서도 송파 헬리오시티처럼 분양권에 적지 않은 웃돈이 붙어 거래되면서 분양권 전매가 늘고 있다. 분양권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정부까지 나섰다.

투기성 거래 감시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지난 달부터 지자체와 합동으로 분양시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에는 전매 제한(민간택지는 계약 후 6개월, 공공택지는 1년~3년) 기간 내 전매나 다운계약(양도소득세를 줄일 목적으로 실제 거래가격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서를 쓰는 행위) 등 불법·편법 거래 행위를 적발해 사법당국에 넘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분양권 시장은 위축 기미가 없다. 웃돈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아파트 분양권에는 2000만~5000만원의 웃돈이, 인근 하남시 미사강변도시에는 5000만~1억원의 웃돈이 형성돼 있다.

이 웃돈은 계약서에 적힌 아파트 분양가 외에 덤으로 매도자(분양권 소유자)가 받는 돈이다.
가령 다산신도시의 전용면적 84㎡(옛 33평형) 아파트 분양가가 3억8000만원이라면 3억8000만원 외에 2000만~5000만원을 더 얹어줘야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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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자 입장에선 아파트 분양가가 총 4억~4억3000만원이 되는 셈이다. 반대로 이 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되면 앉아서 2000만~5000만원을 벌 수 있다. 요즘 아파트 분양 현장마다 북새통을 이루는 이유다.

아파트 분양권을 사고 팔아 돈을 버는 전문직(?) 종사자가 전국에 3000명에 이르는 것도 그래서다.<중앙일보 8월 1일자 1면 ‘아파트 분양권 3회 이상 사고판 3000명 적발’>

주택보급률 110% 넘었는데, 왜

기존 아파트 값은 큰 움직임이 없는데 왜 분양권에는 웃돈이 붙는 걸까.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2014년 이미 110%를 넘어섰는데도 말이다. 수치상으로는 주택이 남아돌아야 정상이다. 신규 분양 아파트는 웃돈은 커녕 미분양이 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분양된 55만 여 가구는 모두 팔렸고, 분양권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이는 주택보급률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보급률은 단순히 주택 수를 가구 수로 나눈 개념이다. 다 쓰러져 가는 폐가는 물론 비닐하우스나 고시원과 같은 주택 아닌 주택까지 포함하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10%를 넘었지만 정작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은 여전히 부족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기준으로 주택보급률이 100%가 된다면 어떨까. 저금리 등 경제적 상황이 지금과 같다고 가정한다면, 당연히 지금보다는 웃돈이 빠지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어지긴 힘들다.

주택의 노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방 주거용 건물의 50.3%가 준공 후 30년이 지났다. 서울·수도권 역시 30% 정도가 지은 지 30년이 넘은 집이다. 주택이 그만큼 낡았다는 것으로 새 집, 새 아파트로의 갈아타기 수요가 꾸준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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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신규 분양시장에 55만여 가구가 쏟아지면서 공급과잉 우려가 일고 있지만 인기 지역 신규 분양시장은 여전히 주택 수요로 북적인다. 사진은 최근 분양한 한 아파트 견본주택. [중앙포토]

살 만한 집은 여전히 부족

주택 노후와는 별도로 우리나라 구도심(원도심)의 쇠퇴율이 70%에 이르는 만큼 낡은 집에서 새 집으로 갈아타려는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낡은 집, 낡은 동네에서 새 아파트, 깨끗한 동네로 이사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계속 늘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택 공급이 확 줄면서 이런 수요가 적지 않게 적체돼 있다. 하지만 주택보급률이나 주택 노후는 분양권에 웃돈이 붙을 수밖에 없는 원론적인, 즉 주택시장 내적 요인일 뿐이다.

이것 만으로는 비정상적인 최근의 분양권 시장을 설명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저금리와 같은 외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몇 년 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돈을 빌려 집을 사려는 사람이 확 늘어난 것이다.

저금리가 부동산 투자 심리 증폭

저금리가 전세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심리를, 낡은 집을 떠나 새 집에 살고 싶은 욕구를 확 증폭시킨 결과다. 집은 아무리 싸도 1~2억원, 비싸면 수억원씩 하는데 이를 모두 ‘내 돈’ 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저금리와 같은 주택시장 외적 요인이 받쳐줘야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인데, 지금이 바로 그 적기인 셈이다. 분양권에 웃돈이 붙는 또다른 이유는 정부가 아파트 분양가를 규제하는 분양가상한제에 있다.

요즘 분양권에 억대 웃돈이 붙어 있는 지역은 대개 신도시 등 택지개발지구다. 택지개발지구는 정부가 주택 대량 공급을 위해 계획적으로 개발하는 도시로 교통은 물론 학교와 같은 기반시설과 주택 수 등을 고려해 건설한다.

대신 공공택지 아파트에 한해 정부가 분양가를 규제하는 데 대개 주변 시세 수준이거나 이보다 싸다. 예컨대 2013년 성남 판교신도시에서 나온 주상복합아파트 알파리움은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분양가가 주변 시세(3.3㎡당 2400만원)보다 훨씬 싼 3.3㎡당 1900만원 선이었다.
이로 인해 ‘로또’로 불리며 청약 경쟁률이 수백대 1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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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시세보다 싼 분양가로 청약 경쟁률이 최고 399대 1에 달했던 경기도 판교신도시 알파리움 아파트. 견본주택 앞에 이동식 중개업자인 떴다방들이 분양권 중개를 위해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실제 이 아파트의 분양권은 2015년 입주 직전까지 분양가에 2~3억원의 웃돈이 붙어 거래됐다. 남양주 다산신도시, 하남 미사강변도시 등지도 비슷한 상황이다.

다 짓지도 않은 집을 땅과 모형만 보고 계약해야 하는 선(先)분양제 역시 원인으로 꼽힌다. 분양부터 입주 때까지 보통 2~3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양가는 결과적으로 2~3년 뒤의 집값이다. 따라서 요즘처럼 주변 집값이 상승세일 때는 당연히 웃돈이 붙을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집을 다 지은 뒤에 분양하는 후(後)분양제라면,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지 않는 한 웃돈이 붙긴 어렵다.

여기에 정부의 정책 엇박자도 힘을 보태고 있다. 급격히 늘고 있는 가계 대출을 잡겠다면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분양권은 대상에서 빠졌다. 정부가 나서서 주택 수요를 분양권 시장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막연한 기대감은 화 부를 수도

여러 가지 상황이, 아파트 분양권엔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에선 “(분양권 투자를) 안 하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감은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이 분양권에 웃돈이 붙기 좋은 상황이라는 것인지 당장 다음달, 내년까지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무리한 투자, 성급한 투자는 삼가야 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만 해도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지면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사람들이 ‘하우스 푸어’(집 갖은 거지)로 전락했다.

분양권 투자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긴 줄이 늘어서 있는 빵 가게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보다 빵을 사서 나오는 사람에게 빵값의 두 배를 주고서라도 빵을 사는 것.'

그렇게 확보한 빵을 또다른 배고픈 누군가가 더 높은 가격에 사줄 때 이익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자기 빵을 사주지 않으면 어찌될까. 본인이 먹으면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빵이 수십, 수백 개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분양권도 마찬가지다. 최악의 경우 잔금까지 치르고 본인이 그 집에 입주하거나 임대를 줄 각오까지 하지 않았다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한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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