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실행의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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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처럼 우리나라 경제가 호기를 만났다고 술렁거린 일은 일찌기 없었다. 이른바「3저」시대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3저 시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얘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햇볕이 비칠 때 건초를 마련하라』는 말도 있다.
벌써 외국의 신문들은 엔화 강세로 일본이 타격을 받는 만큼의 득을 볼 나라는 한국이라는 기사들을 쓰고있다. 정작 득을 보아야 할 우리나라는 정책 당국이나 기업들을 보아도 무슨 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봄이 왔다고 떠들기만 하지, 서둘러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궁리도,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3저」는 다른 나라들도 다같이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혼자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남보다 더 빨리, 더 효율적인 정책적응을 통해 우위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일본의 엔화강세가 우리 경제에 어째서 호기를 제공하는지 그 원인을 분석해 보자. 일본은 이미 1978년에도 미화1달러당 2백엔을 밑도는 엔화강세 시대를 겪은 일이 있었다.
바로 그때와 지금은 표면상으로는 똑같은 엔화 강세이지만 내면을 보면 현저한 차이가 있다.
1978년의 엔화강세는 첫째 지금과 같은 급템포가 아니었다. 그때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기업들이 대응책을 강구할 여지가 있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때의 엔화상승 기간엔 미국과 유럽의 경기가 확대국면에 있었고 따라서 일본의 수출수주도 쌓여 있었다. 게다가 일본의 국내 경기도 호황이었다.
지금은 그런 요인들이 모두 정반대의 상황에 있다.
일본기업들은 그야말로 창졸간에 자동차 타이어의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상황을 맞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1978년과는 달리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해온 신흥공업국들의 공략 또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종래처럼 몇%의 원가절감, 몇%의 생산성 제고와 품질고급화에 의한 가격조정으로 엔화강세를 흡수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우리나라는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첫째, 일본의 수출상품에 필적하는 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여기에는 필수적으로 원가절감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
둘째로 그런 여건을 만들기 위해 최신·최고의 생산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역시 첨단의 기계설비와 첨단의 기술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모두 마찬가지다.
문제는 돈이다. 금융당국은 양질의 자금을 기업에 대주어야 한다. 국제금리와 같은 수준의 자금을 국제금융 시장이 제시하는 것과 같은 호조건으로 기업체에 빌려주어야 한다.
이런 여건이 되면 비로소 우리나라 수출산업체의 취약점이기도 한 중간자재의 수입을 줄일 수 있다. 국산화가 촉진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정책당국이나 기업들이 이런 여건을 하루빨리 조성하지 않고는 아무리 3저 시대가 왔다고 환호해도 우리 경제는 모처럼 도약할 힘도, 기회도 잃고 만다.
우순 풍조라고 모든 곡식이 다 잘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땀흘려 가꾸는 사람만이 몇 배의 수확을 거둘 수 있다.
우리속담에『감나무 밑에서 입벌리고 있다』는 말이 있다. 「3저」시대를 그렇게 맞을 수는 없다. 노력 없이 입벌리고 있는 사람에게 3저는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이 기회에 정부는 적절하고 기민한 정책을 세워 호기의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은 시설개체와 품질 고급화를 보행, 세계시장에 서둘러 나가야만「3저」는 정말 하늘이 준 기회일 수 있다.
기업의 시선도 일본경제의 무대였던 미국만 볼 것이 아니라「파운드고」·「마르크고」·「프랑고」가 진행되고 있는 유럽시장으로도 돌려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해야할 일은 소리만 요란한 환호로 미국·일본만 자극시키지 말고 조용히 대응책을 실천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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