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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서울 휴게소에 ‘스마트 미러’…거울아, 부산 날씨는 어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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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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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화장실에서 김자용(39·오른쪽)씨 등 이곳 직원 2명이 ‘스마트 미러’를 살펴보고 있다. 거울엔 교통 상황 등 정보가 보인다. [사진 장진영 기자]

“여기 휴게소는 기름값이 싸네.” 28일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선 이혜정(33)씨가 말했다. 그는 신기한 표정으로 정면의 거울을 바라봤다. 가로 50㎝, 세로 120㎝ 크기의 거울 오른쪽에 그곳에서 대전까지의 예상 운행 소요시간과 휴게소 주유소 유가 정보가 나타났다. 아래쪽에는 실시간 뉴스가 흐르고 있었다. 이 거울은 ‘스마트 미러’라 불린다. 여러 정보를 띄워주는 디스플레이 장치 위에 필름 형태의 거울을 씌웠다. 휴게소 관리업체에 따르면 이 화장실 거울의 가격은 약 3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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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의 망향 휴게소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씨 작품이다. ‘향교’를 모티브로 삼아 돌과 나무의 색인 회백색·갈색으로 내부를 꾸몄다. [사진 한국도로공사]

경부고속도로 망향 휴게소 화장실 입구는 전통 한옥의 솟을대문(가마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좌우 행랑보다 높게 설치한 대문) 모양이다. 입구를 지나면 작은 정원이 나타난다. 이 화장실을 만든 디자이너 양태오(35)씨는 “망향(望鄕)은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휴게소 이름처럼 고향집이 떠오르는 화장실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확 바뀐 고속도로 화장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바뀌고 있다. 첨단기술 적용이나 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끄는 곳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올해를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문화 혁신의 해’로 정하고 개선사업을 벌여왔다. 도로공사는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전국 고속도로 화장실 93곳의 개선사업을 끝냈다. 올해 말까지 전국 182곳이 모두 리모델링된다.

도로공사가 휴게소 화장실 개선사업에 나선 것은 17년 만이다. 1999년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화장실의 동양식 변기를 서양식 변기로 바꾸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했다.

도로공사는 지난해 12월 한국화장실협회·휴게시설협회 등과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견학을 위해 일본에 세 차례 다녀왔다. 그 뒤 남자는 파랑, 여자는 빨강으로 입구 색을 통일해 멀리서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변기에 휴지를 버려도 막히지 않도록 배관을 5㎜ 이상 넓히는 방안도 이에 들어 있다. 인테리어는 지역 특성이 반영되도록 각 휴게소를 운영하는 민간업체가 맡도록 했다. LG유플러스 같은 통신업체와 협약을 맺고 스마트 미러 등의 설비를 협찬 받기도 했다. 도로공사가 127억원, 각 휴게소 운영 업체가 310억원을 부담해 총 437억원이 투입됐다.

도로공사는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고객 편의를 높이고 지역 문화를 알리는 데 집중했다. 여기에는 지난 2월 이용객 2만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영향을 줬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4.7%가 휴게소 화장실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만족도가 80%는 나올 것이라고 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낮아 놀랐다. 개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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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주변 등에 스키 그림을 그려 놓은 평창 휴게소.

휴게소별로 다양한 콘셉트를 적용한 것도 이번 사업의 특징이다. 영동고속도로 평창 휴게소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주제로 삼았다. 변기에 앉으면 스키 모양의 그림에 발이 닿는다. ‘볼 일’ 보는 시간에 즐거움을 주면서 겨울올림픽을 홍보하겠다는 의도다. 벽면 곳곳에 여러 종목의 관전 포인트도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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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 휴게소는 지역 명물인 ‘500년 느티나무’의 느낌을 살렸다.

31일 문을 여는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 휴게소의 새 화장실은 현풍에서 유명한 ‘500년 느티나무’를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소원을 들어주는 500년 느티나무’ 모형이 화장실 안에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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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주제로 한 영동고속도로 문막 휴게소는 사물인터넷(loT) 기술을 활용해 빈칸을 한눈에 알려 준다.

도로공사는 변화된 한국 사회의 모습을 화장실에 반영하기도 했다. 정보기술(IT) 발전이 대표적이다. 영동고속도로 문막 휴게소 화장실 등 15곳에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접목됐다. 화장실 입구에 모니터를 설치해 비어 있는 칸이 어딘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해준다. 여자 화장실에 수유실·파우더룸·위생용품수거대 등을 갖춘 것도 눈에 띈다. 아기 기저귀 교환대는 기존의 접이식에서 선반 위에 놓는 매트 형식으로 바뀌었다. 도로공사 휴게시설처 김성준 차장은 “접이식 갈이대가 위생상 결함이 있다는 지적을 고려하는 등 여성 편의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좋은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 관광산업 등 다른 산업에도 파급 효과를 낸다고 분석한다. 화장실시민연대 표혜령 대표는 “관광공사가 4~5년 전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비한 실태조사를 할 때 숙박시설과 함께 화장실이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음식점 하나를 가더라도 화장실이 재방문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화장실은 나라 전체의 관광수입과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김진석(29)씨는 “미국의 화장실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깔끔했던 것이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 화장실이 그 나라에 대한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화장실은 한국을 알리는 문화 콘텐트 역할도 한다. ‘세계화장실협회(WTA)’는 2007년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설립됐다. 현재 미국·중국 등 16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 화장실 개선에 국제사회의 힘을 모으자는 취지로 설립을 주도해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는 화장실 개선운동에 앞장서며 ‘미스터 토일렛(Mr Toilet)’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WTA는 낙후된 국가에 깨끗한 화장실을 지어주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의 일환이다.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캄보디아 등 8개국 공무원·교수 등 22명이 WTA 사무국이 있는 경기도 수원의 화장실 박물관 ‘해우재’를 방문했다.

이런 가운데 일반 공중화장실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가진 시민은 여전히 많다. 한국화장실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전국 공중화장실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중화장실 이용자의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66점이었다. 특히 화장실 청소 상태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화장실에 수유실이 설치된 곳은 조사 대상 120곳 중 6%에 불과했다. 한국화장실협회 이은주 사무처장은 “휴게소 화장실의 새로운 변화가 일반 공중화장실의 변화로 연결되길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S BOX] 캐나다엔 땅속에 숨어 있다 취객 많은 밤에 모습 드러내는 화장실도

해외에서는 파격적인 공중화장실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는 낮에는 땅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공중화장실이 있다. 낮에는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땅속에 뒀다가 취객이 많아지는 야간에 지상으로 올라오도록 하는 첨단 화장실이다. 이 화장실 덕분에 노상방뇨가 줄어들자 영국·네덜란드 등에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외형이 흥미로운 공중화장실도 있다. 뉴질랜드 웰링턴의 북쪽 해안가에 있는 ‘쿠무토토 화장실’은 머리가 없는 공룡 두 마리 모양이다. 쿠무토토는 그 지역의 이름이다. 한 마리는 여자 화장실, 다른 한 마리는 남자 화장실이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통풍구가 뚫려 있다. 건축회사 ‘스튜디오 퍼시픽’이 바다에서 튀어나온 괴생명체를 연상하도록 만들었다. 디자인 전문 사이트 ‘디자인 큐리아’의 전문 건축디자이너들이 2014년에 선정한 ‘가장 멋진 디자인의 세계 10대 공중화장실’에서 3위를 차지했다.

영국 런던 템스 강변에는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특수한 거울로 외벽을 만든 ‘투명 화장실’이 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모니카 본비치니가 설계한 화장실로 사용자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글=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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