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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가인하후의 과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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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국내 유가를 앞당겨 내리고 인하폭도 처음 계획보다 더 넓히기로 한 것은 지금의 안팎사정에 비추어 잘된 결정이다. 현재의 국제원유시장 추세로 미루어 원유 가는 상당기간 약세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기왕 국내유가를 조정한다면 되도록 빨리 원유가 인하의 파급이 골고루 확산되기에 충분한 폭으로 내려야 한다.
다만 우리는 이 같은 유가정책의 결정이 지나치게 세 론에 밀러 너무 조급하거나 서둘러 결정될 경우 또 다른 시행착오의 소지가 없지 않음을 우려한다.
아직도 원유시장의 중기전망이 확실치 않은 시점에서 에너지가격정책의 방향까지 조급하게 결정해서는 안될 일이며 지금 가능한 것은 어디까지나 과도적 탄력성임을 강조한다.
지금은 원유가 하락에 대한 광범한 일반의 기대감과, 경기회복에 대한 바람, 그리고 원가절감과 경쟁력 강화의 절실한 필요성, 민간투자회복의 기대감등이 한꺼번에 뒤섞여 있는 형국이어서 자칫 에너지정책이 방향타를 잃고 세 론에 따라 표류할 우려조차 없지 않다. 이런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모처럼의 호기를 낭비해 버리기 십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어느 기름을 얼마 내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엔 강세와 함께 닥친 원유가 하락의 호기를 어떻게 활용하고 적응하여 우리의 숙제인 산업 구조 고도화와 효율화를 차제에 이룩할 것인가 하는 종합적 기본구도를 짜는 일이다.
이는 물론 단시일 안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더라도 나라안의 중지를 모아야 할 시급한 과제다. 전혀 기대되지도, 예측되지도 않았던 엔고와 유가하락의 두 돌연 변수는 만성적인 국제수지 악화와 산업의 저 효율성에 직면해 온 우리에게는 중동특수보다 훨씬 더 큰 산업 변신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뜻밖의 호재는 오랜 기간의 불황과 인플레에 시달려 온 세계경제에 대해 강한 소비성향을 나타낼 소지가 너무 많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 호재를 1회용 경기회복 주사나 소모품으로 쓰고 싶은 욕구 가장하게 잠재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소비 화 정책이 가져올 결과는 너무도 분명하여 유가의 반등과 국제통화의 재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유가와 엔고로 얻어진 가외의 잠재력은 하나도 낭비됨이 없이 경제구조의 개선과 효율화, 기술혁신에 이어지도록 장기구상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미. 일 등 선진국들이 구상하고 있는 것처럼 산업효율화를 위한 새 기금을 구성하든지, 민간투자나 기술혁신을 위한 지원기금을 만드는 일도 구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석유사업기금은 석유관련사업에만 국한되어 있으나 이번 유가하락을 계기로 그 착안점을 확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은 당면한 국내유가인하가 급하지만 보다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산업구조재편의 기반을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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