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돈으로 권력 사서 크는 벤처는 없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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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진경준 검사장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이금로 특임검사팀이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대표를 뇌물공여죄로 처벌하기로 했다. 진 검사장과 함께 간 해외여행 경비를 대주고 주식과 제네시스 승용차를 무상 제공한 행위 등이 포괄적 뇌물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임검사팀은 “법률전문가인 검사 친구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있었다”는 김 대표의 진술에 바탕을 뒀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2006년 ‘바다이야기’ 게임 수사 등 넥슨이 관련된 30여 사건의 처리 과정을 모두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실제로 이들 사건 대부분에서 김 대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02년 연구비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을 때 진 검사장의 대학 동기가 수사검사였고, 무혐의로 결론 냈다. 200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바다이야기’ 사건 때도 프로그램을 만든 회사에 수억원을 투자한 넥슨은 수사를 받지 않았다. 2010년 게임업체 엔도어즈 인수, 2011년 게임 ‘메이플스토리’ 회원정보 유출 때도 역시 무혐의였다. 이 과정에서 진 검사장의 역할이 있었다면 특임검사팀이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수사 초기 진 검사장에게 투자 기회를 제공한 조연이었던 김 대표는 이제 사건의 주역이 돼 있다. 120억원대 투자 차익이나 승용차, 해외여행 경비 제공 등은 도저히 ‘친한 친구끼리의 정상적 거래’로 보기 어렵다. 게다가 진 검사장의 주식 매입자금을 ‘빌려줬다’고 했다가 ‘그냥 줬다’고 말을 바꿔 스스로 의혹을 키웠다. 끝내 정권 실세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1300억원대 빌딩 거래 의혹마저 불거졌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게임 황제’이자 ‘벤처 1세대 신화’로 불리던 김 대표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그는 20대에 넥슨을 창업해 10여 년 만에 매출 1조원에 이르는 게임회사를 일궜다. 하지만 21세기형 산업을 하면서 19세기식 경영을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스스로 게임을 개발하기보다 남이 개발한 게임이나 회사를 인수합병(M&A)해 몸집을 불려 왔다. 지주회사 지분 90%를 본인과 특수관계인이 소유해 ‘황제경영’을 했다. 직원들이 성과를 나눠 가질 수 있는 기업공개를 미루다 2011년에야 일본 증시에 상장했다. 기술 개발과 혁신, 사회적 역할이라는 시대적 요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검찰 수사를 통해 뇌물과 반대급부가 오갔다는 사실까지 밝혀진다면 김 대표 개인은 물론 넥슨이라는 회사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줄곧 강조해 왔다. 청년들에겐 스타트업 창업을 적극 권장했다. 이를 위해 기술 개발과 혁신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김정주 대표를 둘러싼 의혹을 분명히 정리하지 않으면 이런 말들이 자칫 허망해질 수 있다. 금권으로 권력을 사서 기업을 키울 수 있다는 잘못된 기업 문화에 벤처마저 오염될 수 있다. 권력으로 크는 벤처는 없다는 것을 이번 수사가 입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