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만원짜리 옷이 2년 뒤 땡처리 땐 5000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지난 24일 끝난 백화점 여름 정기 세일 기간에 H 남성복 브랜드 매장을 찾은 고정원(34)씨는 기분이 나빠졌다. 석달전 20만원에 구입한 린넨셔츠을 11만4000원에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씨는 “그렇다고 가격이 언제, 얼마나 싸질지 모르는데 세일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지 않느냐”고 푸념했다.

백화점에서 제값 판매한 뒤엔 세일
아웃렛·온라인몰 거치며 몸값 급락
그래도 안 팔리면 무게로 달아 수출
신상품 구입 적기는 세일 마지막 주

소비 침체 속에 각 유통업체가 다양한 할인 행사를 벌이면서 고씨처럼 ‘옷을 언제 사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소비자가 많다.

업계에 따르면 ‘신상품은 백화점 세일 마지막 주, 이월상품은 온·오프라인 역시즌(여름에 겨울상품 식) 할인 행사’ 때 구매하는 편이 유리하다. A 의류 브랜드 관계자는 “예를 들어 신상품 여름 의류를 구매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백화점 봄 정기 세일 마지막 주”라고 조언했다. 의류는 계절보다 2~3개월 빨리 판매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이 시기에 의류업체는 물류 비용을 절감하고 백화점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할인폭을 조금 더 늘리고 상품권 혜택도 종종 추가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겨울 신상품의 경우 가을 정기세일 마지막 주가 가장 저렴하다. 다만 이 때 구입하려다 보면 원하는 디자인이나 사이즈가 품절돼 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두 해 전 의류도 개의치 않는다면 대형 전시장을 빌려서 진행하는 ‘백화점 출장 세일’이나 ‘역시즌 할인행사’의 할인율이 높다.

기사 이미지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의류 유통시장은 1차 시장과 2차 시장(재고시장) 그리고 기타처리 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1차 시장은 신상품이 바로 진열·판매되는 시장이다. 각 브랜드 대리점과 백화점 등이다. 하지만 최근 의류 시장 불황으로 1차 시장에서도 정상 가격으로 판매하는 기간은 짧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정기 세일 외에도 브랜드 별로 할인을 하기 때문에 정가로 판매하는 기간은 2~3주 정도, 길어야 한달”이라고 말했다.

2차 시장에선 1차 시장에서 남은 제품들을 판다. 아웃렛이 대표적이다. 홈쇼핑·인터넷쇼핑도 이월상품을 취급한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아웃렛 매장의 할인율은 30~50% 정도였다. 최근엔 백화점·온라인몰 등과 할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70~80%까지 할인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주말 경기도 파주의 아웃렛에 다녀온 김진영(25·여)씨는 "아웃렛 매장에서는 ‘반 값’이라도 싸다는 생각이 안든다”면서 "70% 이상 할인하는 제품을 사러 간다”고 말했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소셜커머스 등은 제조사가 물류 비용 절감을 위해 적극 활용한다. 품목에 따라 90%까지 세일하는 경우도 있다. B 의류 브랜드 관계자는 "특정 사이즈만 재고가 많을 경우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고 ‘반짝 세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할인율이 아주 높은 경우 브랜드 이미지가 손상될까봐 홍보를 하지 않고 조용히 판매한다”고 덧붙였다.

2차 시장에서도 팔리지 않은 제품은 한 벌에 500~3000원에 재고 처리업체로 넘겨진다. 이런 제품은 길가나 임시 매장(땡처리 매장)에서 ‘장당 5000원’에 판매된다. 소각을 하려 해도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장당 5000원이라도 현금화 하는 쪽을 업체는 선호한다. 이마저도 안될 경우 동남아·아프리카 등에 kg 당 300~500원 선에서 수출한다. 한 의류 수출업체 관계자는 "2010년까지만 해도 kg당 800~900원 가까이 받았는데, 저렴한 SPA 브랜드 등 의류 재고가 많아지면서 반 값 이하로 떨어졌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렇게 수출하는 옷이 한 해 약 7500톤이라고 추산한다.

명품 브랜드나 유명 브랜드의 경우는 백화점 명품 대전 등에서 70~90% 할인 판매하고도 남는 재고는 소각한다.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다. 한 의류 브랜드 관계자는 “물류 창고 등 이리저리 많이 옮겨다닌 옷이라도 사실 생산한 지 2~3년 정도 된 제품의 품질은 괜찮다”며 “다만 고객이 선호하는 디자인 등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2년 동안 안 팔린 옷은 어차피 못 판다고 생각하고 소각하거나 수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의류 생산과 유통 업체가 분리돼 있는 미국이나 유럽은 백화점 등이 직접 옷을 구매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옷이 모두 팔릴 때까지 계속 할인폭이 커진다.

하지만 한국은 의류 제조사가 물류·판매비용등을 부담하고 백화점에 수수료를 낸다. C 의류업체 관계자는 “제조사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물류 비용이다. 쌓인 재고 때문에 부도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나라도 제조사는 만들기만 하고 유통기업은 팔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유통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