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늘 노래, 호러로 할까요 사극으로 할까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기사 이미지

“왜 이런 미친 기획을….”

에픽하이 ‘버라이어티’ 콘서트
관객 투표로 뽑은 콘셉트로 노래
예측 불가능성에 연일 매진 행렬

지난해 힙합 그룹 에픽하이가 전혀 새로운 개념의 콘서트를 열겠다고 하자 스태프들은 이렇게 반응했다고 한다. 준비한 곡을 순서대로 부르고 중간에 대화하는 식이 아니라 호러·사극·누아르·서바이벌 등 6가지 콘셉트를 미리 정해 놓고 공연 직전 관객 투표로 뽑힌 세 가지 콘셉트에 해당되는 노래만 무대에 올리자는 내용이었다.

투표 결과에 따라 부르는 노래가 달라지다 보니 조명·의상·소품 등을 순식간에 바꿔야 했다. 준비한 대로 공연해도 실수가 나올 판에 경우의 수까지 생각해야 하니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콘서트는 ‘현재 상영 중’(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열렸고, 전 회차 매진 기록을 세웠다. 그 공연이 올해도 열린다. 22일 시작해 31일까지 열리는 8회 공연 티켓이 거의 매진됐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에픽 하이의 콘서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23일 서울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린 2회차 공연은 한 편의 ‘리얼 콘서트’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연극·코미디·콘서트가 경계 없이 뒤섞였다. 공연장 입구에서 관객들은 이날 공연할 콘셉트를 두고 투표를 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영화제 시상식에 온 듯 순위를 발표하고 미리 찍어둔 영상을 틀었다.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영상물은 해당 장르와 관련된 코믹한 이야기를 담았다. 데뷔 14년차 힙합 그룹 에픽 하이가 코디미 그룹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날 3위를 차지한 사극 콘셉트의 ‘후기’ 무대에서는 세 멤버가 모두 사극용 복장을 하고 노래 불렀다. 여장을 한 투컷은 가채까지 머리에 쓴 채 네 곡을 소화한 후 “(너무 무거워서)목에 담이 올 것 같다”고 했다. 2위로 뽑힌 호러 ‘검은 아재들’에서는 타블로가 악령 쓰인 환자로 환자복을 입고 나왔고, 1위 누아르 ‘SSG’에서는 모두 양복을 입었다. “마지막 피날레를 벌칙 같은 복장이 아닌 양복으로 하게 해준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세 멤버는 입을 모았다. 라이브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의 콘서트 버전 같기도 했다.

YG 관계자는 “22일 첫 공연은 관객 호응이 많을 거라 예상한 장르 1~3위를 뽑아 미리 큐시트를 만들어놨는데 투표 결과가 예상과 달라 큐시트를 못 썼다”고 했다. 이렇듯 쌍방향 소통, 예측불가능성, 스토리텔링 등 ‘현재 상영 중’에서 뽑아낼 수 있는 키워드는 다양하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이날 공연하지 않은 다른 장르의 무대가 궁금했다. 이런 콘서트가 있었던가. 에픽하이의 무모한 도전은 성공하는 듯하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