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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원리주의자 테러 무기는 ‘불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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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호 28면

유교에서는 죽은 자의 호칭을 벼슬로 대신한다. 벼슬을 못한 사람은 ‘학생’이라 한다. 그래서 지방(紙榜)에 아버지 이름 대신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 올린다. 유교에서 인간이란 인륜(人倫)을 배우는 학생이다.


전통 이슬람학교에서 학생을 ‘탈레반’이라 한다. 또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는 학생들로 이뤄진 극단적 원리주의 무장 세력이기도 하다.


유교의 ‘학생’과 이슬람의 ‘탈레반’은 종교적 원리주의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테러리즘 사용 방식은 다르다. 탈레반이 직접적이라면 유교는 은근하다. 탈레반의 눈이 서방 세계를 향한다면 유교는 내부적 명분을 주목한다.


그렇다. 명분이 바로 테러다. 우리 사회에서 유교적 테러는 마치 조미료와도 같이 모든 곳에 퍼져 은연중에 음식 본래의 맛을 방해하고 있다. 원리주의자들은 자기의 종교적 신념이 사회를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슬람에서는 율법, 유교에서는 인륜(人倫)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이나 유교는 자유나 민주를 테러의 대상으로 삼는다. 배우고 익혀야 할 교조적 경전과는 다른 다양한 의견이나 합리적 판단은 싫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사회란 공공도덕이나 법만 지킨다면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다. 양심에 기초한 정의·평등·박애는 자유민주사회를 지키는 미덕이다. 유교는 자유와 민주 위에 은근슬쩍 인륜을 올려놓는다. 풍속이니, 전통이니, 민족정서니 포장은 다양하지만 내용은 유교 원리다. 따라서 자유, 민주와 정의라도 유교 원리에 어긋나면 ‘불륜(不倫)’이 된다. 원리는 인륜이고 테러 무기는 불륜인 것이다.


유교가 말하는 인륜이란 부자(父子)·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 그리고 군신(君臣) 다섯 관계(五倫)다. 개인적 도덕이지 자유공동체 윤리는 아니다. 하지만 유교는 인륜이란 인간이라면 마땅히 행해야 할 절대 명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륜을 어기면 배우지 못한 ‘쌍것’이나 ‘무도(無道)한 짐승’으로 취급한다. 정의조차 인륜 아래라 한다. 깡패 윤리가 따로 없다. 깡패 윤리라 한번 불륜으로 찍히면 헤어나올 수 없다.


무지막지한 가정 폭력에 대항한 자위권은 부자 관계를 해친 패륜이다. 무개념 노인에 대한 반대 개념은 애비 없는 놈이다. 집권 여당의 불법에 대한 내부자 고발도 의리를 저버린 배신자로 치부한다. 유교 원리주의가 만들어 낸 테러 무기 ‘불륜’은 이렇게 사회 정의를 호도한다.


부모의 사랑이 있어야 효도 있다. 지하철 자리는 노인이 아니라 장애인과 약자의 것이다. 집권 여당의 집단 의리보다는 사회 정의가 먼저다. 인륜으로 남을 혹독하게 불륜으로 몰아가는 억지는 유효하지 않다. 인륜-불륜은 우리네 법이나 교과과정에서 빠졌다. 배울 것도 없어졌다. 이제는 유교 원리주의에 묻혀 맹목적으로 따르는 학생 신분도 벗을 때다.


이호영


현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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