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평화 공세의 속셈 반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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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은 예상대로 우리측의 연례적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트집잡아 예정된 남북간의 경제 회담(1월 22일), 국회회담 예비접촉(2월 18일) 및 적십자 회담(2월25∼28일·평양 개최)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북한의 이 같은 작태는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북한은 85년 1월에도 예정됐던 경제 회담과 적십자 회담을 팀스피리트 훈련을 일방적으로 시비 삼아 4개월간이나 연기한 바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2월의 제10차 적십자 회담 때와 정초 김일성의 신년사 등을 통해 북한은 우리측에 팀스피리트 훈련의 중지를 거듭 요구하면서 훈련 중지가 안될 경우 회담 계속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위협해 왔다.
북한은 언필칭 남북간의 긴장 완화를 위한 회담을 진행하면서 상대방을 자극하는 군사 훈련을 한다면 대화 분위기 조성을 해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논리와 주장은 그들의 과거 행적과는 크게 어긋나는 것이어서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북한은 과거 팀스피리트 훈련이 진행 중인 시기였지만 ▲79년에 남북 탁구 회담 세 차례 및 남북조절위 서울측 대표와 북한측 「조국 전선」 대표간의 두 차례 접촉 ▲80년의 남북 총리 회담을 위한 실무 대표 접촉에 응했고 84년 4월에도 남북 체육 회담에 임했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북한이 전술적 차원에서 그들의 위장 평화 공세를 위해 필요할 경우엔 응하고 그렇지 않을 때엔 비난·불응하는 수법으로 남북대화를 이용해 오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또 백보를 양보해서 북한측이 진실로 남북 긴장 완화와 통일을 위한 회담 진행을 바랐다면 회담 일자를 뻔히 예상되는 팀스피리트 훈련기간 중에 잡지 않았어야 했을 것이다. 특히 제11차 평양 남북적 회담은 북한측이 제시해 우리측이 받아들인 일정이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군사 훈련이란 어떤 국가라도 평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특히 한미간 팀스피리트 훈련은 남북회담 재개와 때맞춰 새로 실시된 것도 아닌, 지난 76년이래 계속돼 온 연례 행사가 아닌가.
또 그 훈련이 북한이 우려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 조성에 역행하는 공격적이라기보다는 방어 개념 하에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측의 참관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북한이 적반하장 격으로 우리의 방어 훈련에 대해 시비하는 것은 대화를 파탄시키려는 구실에 불과하다는 우리 당국의 분석은 설득력을 가진다.
북한은 대화의 성의 있는 지속을 통해 남북한간에 어떤 실질적 합의에 도달하려는 진지성보다는 회담의 지지부진한 지속을 통해 그들의 위장 평화 전술을 내외에 구사하려는데 더 큰 목적을 갖고 남북대화에 임하고 있음이 반증된 셈이다.
때문에 북한은 어떤 계기만 포착되면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시키거나 아예 문을 닫아 버리는 행태를 자행해 왔다.
북한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팀스피리트 훈련이 끝나는 4월말 이후 남북회담에 다시 응해 올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것 또한 북한의 계산된 전술의 일환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북한측은 『대화를 성과적으로 진행시키려면 올바른 대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만 할게 아니라 스스로 쌍방간의 합의 사항을 존중하는 성실한 자세로 임해야 진정 남북 긴장 완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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