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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등생이냐" 부모 통화돼야 외출하는 대학 기숙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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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 전경 [사진 조선대학교 홈페이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조선대 학생 김모(20)씨는 이달 초 새벽 2시쯤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쳐 병원에 있다는 연락이었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외출을 하려던 김씨는 이내 마음을 접었다. 학교 측이 외출 조건으로 부모와의 전화 통화를 요구해서다. 허락을 받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맞벌이를 하는 부모가 잠든 시간에 전화를 하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 같아서다.

조선대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새벽 시간대 외출 조건으로 부모와의 연락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들은 단체 생활 특성상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대학생의 특성인 자율과 책임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20일 조선대 기숙사생들에 따르면 학교 측은 매일 오전 1시부터 오전 5시까지 학생들의 기숙사 외출을 통제하고 있다. "기숙사에서 지내는 학생들의 안전한 생활과 숙면 등을 위한 조치"라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문제는 이 시간대 외출이 꼭 필요한 학생들에게 학교 측이 요구하는 조건이다. 학교 측은 해당 시간대 기숙사 밖으로 나가려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한다. '외출 때 발생하는 사고의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취지의 각서와 부모와의 전화 통화 및 허락이다.

학교 측에 따르면 기숙사생들은 외출이 필요한 경우 출입문 주변 경비실로 와야 한다. 그 뒤 휴대전화로 부모에게 연락해 경비원과 통화가 이뤄져야 한다. 경비원은 부모의 허락이 있을 때만 외출을 허락한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부모와 전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외출 승인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조선대 한 기숙사생은 "초등학생도 아닌데 외출 조건으로 부모의 허락을 받는 건 학생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외출 문제는 벌점제도 만으로도 통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학교 측의 요구사항은 기숙사생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담은 '사생수칙'에도 없는 내용이어서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생수칙 제5조(출입제한)는 출입 통제 시간(오전 1시~오전 5시)과 벌점 관련 규정만 있다. 출입 통제 시간에 출입할 경우 회당 1점의 벌점을 받는다. 벌점 15점(학기 중 기준)이 쌓이면 기숙사에서 나가야 한다.

조선대는 기숙사생들이 방을 비운 상태에서 몰래 들어와 불시 점검을 벌이는 사실이 올해 초 알려져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조선대 관계자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내린 조치"라며 "학생들은 불만을 느끼고 있지만 학부모의 요구가 많았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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