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가 잘 안 되는 이유|조순<서울대교수·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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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본주의 경제에 있어서 투자란 마치 인체에 있어서의 심장의 고동과 같다. 경제의 성장, 경기의 변동, 수출의 신장, 고용의 증가 등은 모두 투자활동에 의하여 좌우된다. 잘 되는 경제 치고 투자가 부진한 경우는 없다. 역으로 투자가 활발한 경제는 거의 모든 경우에 경기가 활발하고 성장률이 높다.
지난 수년동안에 나타난 한국경제의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투자의 부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투자의 총량도 부족하고 특히 제조업부문에 대한 투자가 부진했다.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성장률이나 수출증가율이 높을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씨를 뿌리지 않고 풍작을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제조업부문에 대한 투자가 부진한 이유를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유도 잘 모르고 대책을 강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금리가 높다든지, 금융이 경색 하다는 등의 이유도 들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열거하는 이런 요인 이외에도 나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다는 사실을 중요시하고 싶다.
첫째, 투자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착상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이노베이션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투자가 활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활발하게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기업 하는 사람들은 요즘 「투자 마인드」가 없다고 한다.
「투자 마인드」란 무엇을 말하는가.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것으로 보이는 이 말은 여러 가지 기업운영의 저해요인으로 말미암은 「투자의욕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공공기관의 과다한 간섭, 각종 부과금의 가중. 노사분규의 첨예화, 정치·사회의 혼란 등으로 말미암은 기업의욕의 저상이 이것이다.
작금의 사태는 분명히 투자를 저해하는 이러한 요인이 늘어나고 있으리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이디어」의 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마디로 투자가 부족한 이면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활발히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 기본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기업풍토 내지 기업환경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로막는 강력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부족하리라고 생각되는 이유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자. 우선 중소기업을 보면 거기에는 아이디어가 개발되기 어려우리라는 이유를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아이디어를 개발할만한 인재가 중소기업으로 잘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중소기업은 인재의 부족과 자금의 부족으로 한대지방에 놓인 채 겨우 숨이나 쉬고있는 정도다. 빈사상태에서 아이디어가 개발될 수 없는 것이다.
대기업은 어떤가. 여기에는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상당한 투자가 이루이지고 있다. 그러나 그 투자의 대부분은 외제 아이디어의 직수입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이노베이션에 의하여 뒷받침된 것은 드물다고 생각된다. 대기업에는 기라성같이 많은 인재가 있다. 그러나 그 인재가 새로운 착상을 하는 데에 잘 활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거기에서의 의사결정 방식은 관료제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획일적이며 상의하달의 행정원칙이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이렇게 볼 때 대기업도 역시 체질적으로 앤타이 이노베이터라는 면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 나라의 기업이 많은 채무(특히 외채)를 지고 있다는 사실은 기업의 투자 「능력」을 심히 제한하리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내채」는 그만두고 우선 외채만이라도 생각해 보자. 현재 우리 나라의 연간 외채상환액은 70억∼80억 달러에 달하고 있으며 이것은 GNP의 약 6%가 된다.
이 엄청난 금액의 상환은 대부분 직접·간접으로 기업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막대한 액수의 상환을 하고 나면 대부분의 기업은 아마 신규투자를 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기업이 투자를 하자면 그만큼 또 외채를 져야한다. 작년 말의 우리 나라 외채잔액은 4백 65억 달러로 그것은 재작년 말에 비해 34억 달러, 약 8%의 순증가를 보였다고 보도된 바 있다. 작년 같이 투자가 부진했는데도 그만큼 외채가 늘어나야 했다면 앞으로 투자가 좀더 활성화되자면 외채는 더욱 빨리 늘어나야 할 것이다.
이러한 채무의 중압 속에서 기업이 어떻게 또 다른 채무를 지겠는가. 아이로닉한 일이지만 또 다른 채무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은 부실기업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날의 부실 투자를 통한 고도성장은 결국 오늘의 성장요인을 저당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제 그 저당권이 어김없이 행사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저성장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은 국민경제의 고통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지난날의 고도성장 대가로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에 있어서도 부실 투자를 할 소지는 그대로 남아있다. 오늘에 부실 투자를 촉진하면 할수록 내일의 성장력은 줄어든다. 지나친 건물투자·도로투자 등은 모두 누를 다음날에 가지고 오는 부실적 요소를 지니는 투자들이다. 성장은 좋으나 부실 투자를 하지 않도록 당국과 기업은 각별히 조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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