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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되돌아본 '8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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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세상이 복잡할수록 말이 많다.
올해따라 선거·전면해락·예산파동등으로 정치가 유별나게 시끄러웠고 데모·노사문제·무역마찰등으로 사회·경제적으로도 곡절이 많았다.
연설·발언·주장·대화·구호·고함·욕설등 온갖 형태로 나타난 「말」을 따라 지난 한해를 돌아본다
○…올해의 정치는 선거분위기로 시작됐다. 선거일이 추울때인 2월12일로 결정되자 미처 전극도 못 갖춘「신당」(신민당)측에서는 「동토선거」라고 정부·여당등을 공격.
여야간의 상호 공방전도 치열해져 묘정공민한주총재는 1월22일 대구에서 신정당의 지역혐의회모금을 「민정세금」 이라는 신조어로 야유.
이종찬민정당총무는 신민당의 안동지구당 창당대회에서 일어난 압사사건을 예로 들어 『신묘은 신망이 아니라 고물들만 모인 고당』이라고 공격.
신민분창당의 배후 산파역이던 김영삼씨등은 조윤형·정대철씨등이 민한신에 인당한데 대해『버릇을 고쳐주겠다』며 이철·이민우씨를 각각 후보로 출진시켰는데 버릇고치기 대상자가 된 조윤형씨는 『당선을 목표하기 보다는 나를 욕할 사람을 골라낸 모양』 이라며 『신민당에서 나와 선명경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미국에 있는사람(김대중씨를 지칭)밖에 없다』고 호언했지만 『정치사형수 성배에 돌아오다』라는 구호를 내건 이철씨에게 패배.
신민당후보들은 민정·민한·국민비을 가리켜 「1, 2, 3중대」 또는 「제1, 2, 3방송」 「한배에서 나온 세쌍동이」(김태룡)등으로 매도했고 민정당에 대해선 「민주정복당」, 민한당은 「민주한심당」 (이철후보)이라고 공격.

<제 조상 안섬기고…>
이밖에도 다른후보들을 개에 비유하면서 『보신탕집에나 보내야할 것』이라는등 상식이하의 비난이 난무했고 일부 야당후보들은 『이순신장군이 나와도 이 선거법으로는 대통령에 당선못한다』(이관형민한후보)는 말로 직선제개헌을 주장.
○…총선후 야당통합과정에서 민한당은 「대술」 통합을 주장했지만 4월3일 민한서의원들의 대거 탕당,신민당임당으로 무산.
이같은 민한제 와해를 두고 정가에선 『사이공 최후의 날』 로 비유.
○…김대중·김영삼씨는 3월6일 해금이 있은 후 누구 이름을 먼저 쓰느냐에 민감한 반응. 3월l8일 금대중씨가 민추협공동의장에 취임하면서 김영삼씨는 자기이름을 나중에 써달라고 했고 김대중씨는 『내가 나이가 두살위니 형님대접을 하는 것 같다』고 해 김대중·김영삼씨 순서로 낙착.
그후 두 김씨는 미묘한 관계를 보이는 가운데 김대중씨가 「역할분담론」을 제기해 한차례 파문.
7월10일 두 김씨와 이민우총재 3자희동에서 김대중씨는 『역할분담론의 골자는 나와 김영삼씨가 대통령과 부통령을 4년씩 교대로 하자는 러닝메이트안』이라며 『현체제하에서도 5년을 살았는데 당신(김영삼)밑에서 내가 또는 내밑에서 당신이 4년을 못참겠느냐』고 했다는 것.
이 소문이 나자 김칫국부터 마시는게 아니냐는 걱정들이 나왔는데 『억만장자가 될때를 상상해서 회장·사장자리를 정하는 것은 웃기는 일』 (황명수씨) 이라고 비판.
○…9월19일 신민당의원총회에서 최낙도의원은『우리는 지금 민정당이라는 전봇대와 샅바를 잡고 씨름을 하는 격』이라고 이사건을 개탄.
이 과정에서 이세기민정당총무는 『국회에는 「시간이란 묘약」이 있다』고 말해 이 말이 자주 쓰였다.
가까스로 정상화된 정기국회는 그후 「원색발언」 「저질발언」 「수위높은 발언」등으로 「발언파동」을 겪었고 찾은 파란으로 예정된 일정이 뒤집어지고 그날 일정을 그날 겨우 합의하는 식으로 운영되자 「하루살이 국회」 라는 말이 한때 유행됐다.
또 이재형의장은 여야의원의 야유로 점철된 본화의를 개탄, 『내일은 또 어디서 천둥번개가 칠지 마음이 편할날이 없다』 는 말을 남겼다.

<전봇대 잡고 씨름>
신민당은 「부의장 선출파동」으로 개원을 거부하다가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가는데 무슨 명분이 필요하느냐』 는 리총재의 명언 (?)을 앞세워 동원.
민정당이 재무위에서 조감법을 날치기 통과하자 이의장은 『여당만으로 문제가 많은 조감법을 통파시켰으니 백이 먼저 둔 셈이군』이라고 바둑을 빗대어 꼬집기도.
○…정기국회의 대정부질문과 상임위에서 특히 경제문제에 대한 야당공세가 드셌다. 신민당의 송원영의원은 신병현부총리의 경제악관에대해 『돼지신세는 그대로인데 돼지우리만 고쳐진게 아니냐』고 힐난. 홍사덕의원 (신민) 이 금년경제성장률 5∼6%가 확실하냐고 몰아불이자 평소 조용한 편이던 신부총리는 『내가 신이냐』고 감정을 표시.
○…12월2일 예산안이 민정당에 의해 단독통과되자 이른바「의사당내 폭력」이 문제됐다. 장기욱의원 (신민) 은 민정당의 의원총회장 문을 부순것은 『장애물제거』행위라고 주장했고 야당의원들에게 멱살을 잡혔던 김종호예결위원장은 『내몸에 손댄 사람은 절대 잊지않겠다』며 독기 (?).
이어 민정당측은 개헌연구특위안 협상이 결렬된 책임을 양외의 두 김씨에게 돌려 호태우민정당대표는 『신민당에는 상전이 따로 있어 리총재가 대화창구나 대표역할을 못하고 있다』 (춘천발언) 고 했다.
이바람에 여야대림이 악화되자 이재형국회의장은 『당분간 복덕방문을 날겠다』고 언명.
○…지난 한햇동안 몰아쳤던 거의 모든 정치파란의 진원은 개헌문제.
『직선제개현만 되면 현대통령이 출마해도 상관없다』 (4월 이민우신민당총재의 관훈클럽토론회)는 야당측의 개현주장에 대해 호태우민정당대표위원은 5월 12대개원국회에서 대표연설을 통해『우리는 직·간선제도 해보았고 내각책임졔도니 대통렴책임제도 해보았으나 못해본것은 평화적 정권교체일뿐』이라고 호헌론을 전개.
대정부질문에서 김수한의원 (신민) 은 『개현이 안될경우 88년의 서울하늘이 최루탄가스로 뒤덮일 때 올림픽이 명실상부한 민족제전이 될지 우려된다』 고 경고.
개헌공방이 피크를 이룬 정기국회 운영위에서 김형내의원 (신민)은 『통일 주체국민회의가 선거인으로, 장충체육관이 잠실체육관으로 바뀌었을뿐』이라고 꼬집으면서 현행현법이 유신헌법의 재판이라고 주장. 이에대해 민정당의 안영화의원은 『대통령직은 국민과의 계약으로 전세낸자리』라며 『전세기간이 끝나기도전에 입주자를 물러나라고한다』고 야당을 비난
여야공방의 와중에서 이철승의원은 시종 내각책임제를 주장, 『대통령 직선제만이 민주화의 유일한 길이라고 내세우는것은 마치 벌거벗고 장도칼 차는 격이며 제집 지으려다 남의집 지어주는격』이라고 했다.
○…올해 정가에서는 과거에 보기어렵던 「장외」「가을정국」「민주화일정」등의 용어가 자주 나오고 이를 둘러싼 여야시비가 많았다.
두 김씨가 밖에서 신민당을 주무르자 민정당측은 야당의 「장외정치」라고 비아냥.
이종찬민주당총무는 개원협상이 한창인 4월24일 『신민당은 두김씨의 화렴청정을 받고있다』고 비난했고 두김씨를 「대주주」로 비유.

<수렴청정 받고있다>
이에 대해 금수한신민당부총재는 『진정 무서운 양외는 물리적힘의 행사가 보다 능률적이라고 착각하는 「집권당주변의 양외」』(5· 22국회대정부질문) 라고 여권의 양외를 오히려 경계. 호태우민정당대표위원은 7월16일 기자간담회에서 여권의 양외에 대해 『군을 얘기하는 모양이지만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리 없다는 원인적 상황도 없는데 당찮은 추측』 이라고 일축.
그런가하면 신민당은 거대야당으로 부상되자마자 이른바 「민주화일정」의 제시를 요구.
이민우총재는 3월5일 일본산께이신문과의 회견에서 『전대통령은 민주화일정을 밝히고 퇴진하라』고 요구해 민정남측은 강경반박성명.
김대중·김영삼씨는 6월17일『가·을 정기국회에서 여야간에 민주화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봄에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남궉김이라고 해 「가을政局」 이란 말이쓰이기 시작.
이에 심명보민정당대변인은 『두金씨의 발언은 사제민주주의』 라고 공박.
○…분단40년만에 이뤄진 남배고향방문단및 예술방문단의 상호방문에서도 기억될말한 말이 많았다.
지학정주교가 9월21일 평양에서 동생 용화씨(61·여)를 만났을때의 「천당 논쟁」은 분단의 깊이를 실감시켜주었다.
『우리는 살아서 천당가는데 오빠는 죽어서 천당가겠다니 돌았다. 북한에서는 모두가 잘먹고 근심없이 갈살아 이곳이 천당인데 천당을 어디에서 찾겠다는 것이어요』(9·21 평양고려호텔상봉장)
평양의 어린이들이 토해낸 이야기들은 충격걱이었다.
『남조선은 미국놈들 때문에 어린이들이 깡통을 차고 거리를 헤매며 밥을 얻으러 다니고 있읍네다』 『서울에는 큰 빌딩이 없디요. 왜냐하면 미국놈둘이 주리를 틀고 있어 없는거 아니 가씨요』(평양서예학원 인터뷰)

<갓고쳐쓰다 당한꼴>
우리 취재진이 보고온 「김일성교시」중에는 이런것도 있었다.『코고는 사랍과 코 골지 않는 사람을 한방에 투숙시켜 잠을 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냄(휴양소에 나불은 교시)
○…학생시위가 절정읕 이루던 지난 5월8일 학생들의 투석으로 경찰부상자가 속출하자 서울동부경찰서장 예계해 총경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시위진압용 차량의 양쪽에 「무석무탄(돌을 던지지 않으면 최루탄을 쏘지않겠다) 」 「인즉인」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건 것.
이에대해 세종대학생들은 즉각 교문앞에 「무탄무우(최루탄을 쏘지않으면 돌을 던지지 않는다) 」이라고 쓴 피킷을 세워 응수했으나 결국 이 공방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으로 결론없어 끝나버려 그뒤의 시위에도 경찰과 학생들은 계슥해 최루탄과 투석전을 벌였다.
○‥올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문화원사건의 결심공판(9월25일) 에서 피고인석의 한 학생은 갑자기 『김에 가겠다』고 일어서 교도관과 승강이를 별였는데 재만장인 이재훈부장만사가『자네 집이 어디 있는가』 고 묻자 이 학생은 『서울구치소가 바로 내집』 이라고 대답.
이재훈부장판사는 판결선고와 함께 이례걱으로 「훈계문」을 낭독해 그후 「훈계판사」 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9월의 법관 인사파동으로 대한변협의사퇴권고와 사상초유탄핵발의안이 국회에 발의되는 등 곤욕을 치른 유태전대법원장은 12월9일 전국법원장회의에서 혼시를 통해 『일부 언론의 과장보도로 인해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법원장단핵발의라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며『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쓰다가 오얏도둑으로 몰린 격이 됐다』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
○…미국의 개방압력에 불황마저 겹친 경제계는 과거 어느해보다도 세수큰 반영하는 신조어가 많았다.
앨범에 대한 덤핑판정으로 수출길이 막힌 앨범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애국세일」이라는 이름아래 동정구매를 호소.
각 기업이 신규채용사원을 즐이자 「학력인플레」 현상이 도처에 나타났고 국제그룹의 정리등으로 부보기업정리에도 「끼워팔기」가 성행.
한미간 무역분쟁이 변 본격화되면서『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는 선별개방론이 표면화.
계속적인 소값하락으로 항의·시위가 잦아 지면서『소값이 개(견) 값』 이라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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