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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돕기 공약 지켜요” 기특한 초등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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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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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어룡초 학생들이 지난 6일 열린 중고물품 나눔 장터에서 친구들이 기증한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이날 행사 수익금은 불우이웃들을 위해 쓰여진다. [사진 어룡초]

지난 6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어룡초등학교 강당. 바닥에 깔린 은박매트 위에 책과 학용품이 놓이고 행거에는 어린이용 옷들이 내걸렸다. 가슴쪽에 ‘장터 진행요원’이라고 적힌 빨간색 조끼를 입은 학생들은 학부모와 함께 개당 500~1000원에 물건들을 판매했다. 강당을 찾은 아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열품을 살펴보고는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 지폐와 동전을 꺼내 물건을 구매했다. 이날을 위해 모아온 용돈이다.

광주 어룡초 회장 선거서 제안
학생회 주도로 나눔장터 개최
학용품·장난감 등 기부받아 판매
수익금은 노인시설 위해 쓸 계획

광주 어룡초 학생들이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중고물품 거래 행사를 열었다. 학생회의 주도 아래 전교생이 참여한 행사다.

‘어룡 사랑나눔장터’라고 이름 붙여진 이날 행사는 학생회장인 6학년 김은서(13)양이 기획했다. 김양은 지난해 12월 치러진 학생회장 선거 때 “나눔장터를 열어 중고물품을 나눠 쓰고 우리 주변의 불우이웃에게 도움도 주겠다”고 공약했다.

학생들은 어른스러운 공약을 발표한 김양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 결과 김양은 2016년도 1학기 학생회장 선거에서 경쟁 후보인 남학생을 제치고 당선됐다.

김양과 학생회 소속 학생들은 임기가 끝나기 전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행사를 추진했다.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나눔장터 개최 시기와 장소를 정한 뒤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물품을 기부해줄 것을 독려했다.

행사가 다가오자 기부 물품이 쌓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집에서 쓰지 않는 학용품과 장난감·인형을 기부했다. 몸이 자라면서 더 이상 입지 못하게 된 옷들도 가져왔다. 이렇게 옷 700여 벌과 학용품 100여 점, 완구 150여 점, 책 300여 권이 모였다.

학부모들도 힘을 보탰다. 학부모회 소속 어머니 20여 명은 기부물품 정리와 진열·판매를 도왔다. 생활비를 털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행사 당일에는 1·2학년을 시작으로 3·4학년, 5·6학년 순서로 장을 봤다. 옷 등 100여 점의 물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물건이 판매됐다. 행사 취지에 공감해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물론 교사들까지 참여한 결과다. 6학년 이동건(13)군은 “우리 주위에 참으로 많은 물건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앞으로는 물건을 아끼고 친구들과 나눠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날 행사 수익금 98만여원을 어디에 쓸지 고민 중이다. 학교 주변 노인시설에 찾아가 할머니·할아버지에게 필요한 물건을 전달하는 방안과 현금으로 전달하는 방법 등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일부 금액은 여름철 학교 화장실에 둘 방향제를 구입하는 데 쓰기로 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게도 상을 준다는 의미다.

학생회장 김양은 “친구들에게 약속한 공약을 지킬 수 있어서 뿌듯했다”며 “나눔장터를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좋은 일도 할 수 있게 돼 더욱 보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양은 자신의 또다른 공약인 ‘사랑의 우체통’ 설치도 이행함으써 친구들 사이의 메신저 역할도 했다. 싸움이나 오해로 인해 서먹해진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교내 우체통에 넣으면 김양이 대신 전달해주겠다던 공약이다.

학생회 담당인 임종원(39) 교사는 “학생들이 직접 기부한 물건을 팔아보면서 자원의 소중함을 느끼고 작은 노력으로도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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