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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사드, 왜 재검토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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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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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사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동서고전은 최상의 정치는 있는지조차 모르는 정치라고 했거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나라는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다.

대선 시점의 정상회담 문건 폭로부터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세월호 침몰, 메르스, 청와대 문건 유출, 가습기, 신공항 건설 파동, 사드 배치까지 국민 삶은 온통 들쑤셔 놓은 상태의 연속이다. 핵실험, 미사일 발사, 방산비리, 개성공단 폐쇄를 포함한 안보 문제까지 더하면 지금은 난세다.

특히 사드 배치 문제는 국익과 민익(民益)의 일치와 충돌이 혼존(混存)하는 초유의 문제로 다가온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실효성이다. 그럴 때 배치 결정의 내용과 절차는 모두가 심각하다. 민익의 총합이 곧 국익은 아니지만, 민익 없는 국익은 없다. 사드 배치가 예정되었던 ‘모든’ 지역주민이 강력히 반대한 요인을 수용해 정부는 민익과 국익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항상 애국만 했던 주민들이 ‘모든’ 지방에서 강력 반대한 연유를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선 안 된다.

국민들은 국가안위라면 언제든 민익을 양보해 왔다. 그러나 전선과 수도, 다수 국민의 생명과 재산, 주요 정부시설과 산업기지를 방어하는 데 무익지물인 특정 무기 도입을 놓고 이토록 국가적·국제적·지방적 대분란을 야기할 필요가 있는가? 나아가 민생과 경제, 시장과 기업을 위해서도 ‘코리아 리스크’를 우리 스스로 증폭시켜 수출·외환·금융·해외자본을 동요하게 해선 안 된다.

국제적 국익도 크게 갈린다. 장기적으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이원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 생명(안보)과 식량(경제)이 맞지 않는 생물은 오래 생존할 수 없다. 한·미 동맹 없는 한국의 생존·발전·통일은 전연 불가능하다. 한·중 협력 없는 발전·경제·통일도 불가능하다. 문명과 문명, 제국과 제국 사이에 위치해 온 경계국가의 불리한 숙명이자 열려진 기회다. 미·중 G2시대의 도래, 교량국가의 운명적 위치, 안보와 경제 동시 필수고려, 북핵 폐기와 평화의 과업, 네 가지 요소를 중첩할 때 이제 ‘한·미 동맹과 한·중 준(準)동맹’ 조합은 선택 문제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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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는 한·중 수교 이래 거보(巨步)해 온 한·중 협력과 남북관계 대북 압도의 국제구도를 급변시킬 위험이 크다. 남한 주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상실케 할 수도 있다. 북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국제대오도 균열될 것이다. 뼈아픈 손실이다. ‘북핵 대 평화’ ‘북한 대 세계’의 대립구도는 사드로 인해 ‘북핵 대 사드’ ‘한·미·일 대 북·중·러’로 전이해 북한을 국제고립에서 탈출시켜 줄 개연성이 크다.

게다가 사드 배치는 국제사회에 ‘북핵 폐기’ 대신 ‘북핵 인정’ 구도를 낳을지 모른다. 북핵 문제가 상수로 간주되며 비핵화의 국제동력은 상실될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협상과 외교는 실종되고 군사대치만 남게 된다. 특히 한·미의 오랜 주장인 ‘북한 비핵화에서의 중국 역할론’에 조응해 적극적인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동시에 최초의 주도적인 중국발 비핵화 구상인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교환’ 논의를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일거에 거부한 채 사드 배치로 대응한 것은 북핵 문제와 평화통일에서 중국의 역할공간을 부인하겠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음에 정녕 예리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차분히 묻자. 주한미군 주둔, 한·미 상호방위조약, 전시작전지휘권의 미군 보유라는, 21세기에 유례가 드문 3중 대미 안전장치를 갖고도 특정 무기 하나를 도입하지 못해 국민생명과 국가안보가 위험하다면 정부와 군은 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과정의 문제는 체제와 헌법의 근간인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에 직결된다. 국가안위와 국민이익과 재산 문제는 의회의 핵심적 논의·동의·비준 사안이다. 국민대표가 국정을 책임지는 대의민주주의의 최고원리는 집행부(행정부)와 입법부의 분립, 그리고 입법부 우위다. 집행부의 ‘집행’은 ‘따르다’ ‘수행하다’는 말에서 나왔다. 국민의사의 표현인 입법자·의회·법의 결정을 따라 수행하는 곳이 집행부라는 뜻이다. 따라서 입법부의 권한과 역할인 비준과 동의 절차를 생략·포기하는 것은 국익과 민익과 민주주의를 위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의 3대 요소는 미·중 협력, 일본 평화헌법, 한반도 비핵 평화공존이다. 앞의 둘이 불안한 현금 상황에서 마지막 요소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적·국민적 대지혜와 대결단이 요구된다.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이끌어 온 우리가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 역시 선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적·국민적 실익을 위해 사드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연기·취소·국민 동의, 세 선택지 중 하나를 바르게 택하기 위해 국민 대토론과 국회의 입법자적 지혜와 역할이 필수적인 지금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