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선배의 밥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한 대학의 지방 캠퍼스로 문학강연을 갔다가 작은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썰렁한 강당에서 두터운 옷을 껴입고 덜덜 떨며 강연을 마치고 나니 벌써 밤, 주최한 학생들이 회식에 초대하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운동장을 가로질러 캄캄한 산언덕을 터벅거리며 얼마쯤 내려가자 그곳에는 완전한 하나의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오밀조밀 수십개를 헤아리는 간이술집과 천막으로 된 밥집, 비닐로 만들어진 카페가 저마다 간판을 달고 군집돼 있는 것이었다.
특별히 회식을 위해 미리 예약해 놓았다고 하는 비닐로 만든 닭장 같은 술집에서 아직도 살아 펄펄거리는 콩나물 한 접시에 수북이 담아 내온 밥을 먹었다.
콩나물엔 고추씨가 데굴거렸고, 밥은 설익었지만 그들은 젊은 열기로 그것을 익혀서 잘도 먹었다.
이 술집 주인은 작년에 졸업한 그들의 선배라고 했고, 또 건너편 밥집 형님도 이 대학을 10여년 전에 나온 분인데 중동에 가서 벌어온 돈으로 대학을 나온 형수님과 함께 이렇듯 밥집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 학생이 귀띔해 주었다.
수출이 막혔다는 문제의 앨범 한권을 무거운 마음으로 안고 돌아오며 나는 그날 밤 따라 이 땅의 겨울바람이 온몸을 더욱 시렵게 파고드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의 대학이 안고 있는 최대의 문제를 「최루탄과 투석」이라고 정의해 놓고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사이에 바로 대학을 구성하는 단위로서의 그들 하나하나는 당면한 취직 문제·군대문제, 그리고 전공이나 가치에 대한 갈등 등으로 마치 두통처럼 끓고 있었던 것이다. 『취직도 못하고 졸업하시는 불쌍한 우리 형님들을 송별해주자』는 캠퍼스 안 여기저기 나붙은 송별회 공고문을 읽으며 대학은 단순히 직장인을 기르기 위한 기능으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고 안이한 대답만을 되풀이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선배로서, 그들의 스승으로서 우리 어른들은 좀더 그들을 알아야했고 따뜻이 배려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4년의 시한이 끝났다고 해서 아무런 준비도 없는 그들을 혹한의 벌판으로 그냥 내쫓는 것 같아 이번 겨울이 더욱 춥고 부끄럽기만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