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마리 토끼」한손에 잡힐까|세계경기·환율등 도처에 복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경제기획원은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에 관해 밝게 보는 청사진을 내 놓았다.
14일 발표된「86년도 경제운용방향」에 제시된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의 모습은 7%성장에 경상수지는 균형을 이루고 물가는2∼3%선에서 안정되는 것으로 돼있다.
흔히 얘기하는성장·국제수지· 물가의 세마리 토끼를 한손에 잡겠다는 것이다.
이대로만 된다면 그 이상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실현가능성에 있다.
기획원당국은 친절하게 이들 정책목표의 실현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설명을 불이고 있다.
예컨대 7%성장에 대해서는 금년도 환율 실세화등 수출 촉진책의 효과와 엔화강세를 등에 업은 수출증가(8·8%↓10%),수출회복에 따른 제조업성장률의 상승(5·8%↓8%),공공투자사업 확대와 주택건설의 증가추세, 수출산업 설비자금의 수요증가에 반영된 투자회복 (5·6%↓10%),민간소비의 증가 (4%↓4·5%) 등이다.
국제수지균형이 가능하다고 보는 근거로는 수출 회복에 따른 무역 흑자 폭 확대(1억달러↓9억달러) ,국내저축률증가 (28%↓29%),엔화 강세에 따른 대일무역역조 시정가능성, 외화경비절약파 소비절약 분위기의 확산등을 들었다.
물가안정에 대해서는 연 4년간의 낮은 물가상승으로 경제주체, 예컨대 기업이나 가계의 저물가 적응능력이 향상됐고 올해의 환율인상으로 내년에는 명목환율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으며 원유가가 배럴당 1∼2달러정도는 떨어질 전망이고 부동산 종합대책으로 투기현상은 없을 것 이란 점을 들고있다.
모두 그럴싸한 설명이다.
그러나 내년도 경제에 영향을 미칠 변수는 여기에 나열된 것만은 아니다.
우선 간과해서 안될것이 9월22일 5개국 재무장관회의(G5) 에 의한 환율질서의 변동이다.
달러화가치의 하락에 의해 이제까지 하락세를 보여온 국제 원자재 값이 내년에는 4%나 오를 전망이며 엔화강세에 의해 대일 의존도가 높은 기자재의 수입단가도 30%에 가까운 인상요인을 안고있다.
수입원자재·기계설비의 가격상승은 바로 물가에 파급되게 마련이고 수입부담을 늘려 국제수지를 압박하게 된다.
경제기획원은 내년도 수출이 10% 느는 반면 수입은 6·9%증가에 그칠 것이란 가설을 세우고 있으나 수출의 증가가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입을 유발해온 우리의 경제체질을 감안할때 과연 수입이 이정도로 억제될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가를 보더라도 수입물가 상승외에 설비자금의 확대등으로 통화량이 12∼14%나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그 동안 억제해온 공공요금등 각종 물가가 고개를 들고 있는 마당에 과연 2∼3%억제가 가능할 것인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수출 증가에 대한 기대다.
환율인상이 수출을 늘리고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은 결코 낙관을 불허한다.
세계의 주요경제예측기관은 한결같이 내년도 세계교역량의 감소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수출시장인 선진국의 교역량에 대해 IMF는 금년의 6·3%에서 내년에는 4·8%로, DRI도 6·5%에서 5%, NIESR도 5·9%에서 4·8%로 증가율이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경상수지적자로 고민하고있는 미국의 교역은 더욱 위축되어 IMF는 금년의 11·1%에서 내년에는 5·8%, DRl는 10·8%에서 4·9%로 각각 절반이하로 줄어들것으로 보고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여건에서 환율의 인상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우리만 수출을 10%나 늘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수출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7% 성장도 어려워질 것은 물론이다.
세계 주요경제예측 기관들이 우리의 성장전망을 낮게 잡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성장·국제수지·물가가 모두 쉽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있는 셈이며 정부가 그려낸 밝은 청사진에는 도처에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문제점외에 또 하나 지적해야할 것은 투자 전망이다.
정부는 수출증가와 수출설비자금지원확대를 근거로 설비투자증가율이 금년의 4%에서 내년에는 10%로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점치고있다.
그러나 7·5%의 성장을 이룩한 84년에도 5·6%증가에 그쳤던 설비투자가 과연 내년에 10%나 늘어날것 이냐는 의문이다.
지금의 투자기피현상은 자금부족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 사회적불안의 점증등에서 비롯된 투자심리의 위축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수출이 잘되고 경제가 활기를 되찾는다면 투자수요도 늘겠지만 수출과 성장에 다같이 불안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얼어붙은 기업의 투자마인드가 과연 슬슬 풀릴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정부는 내년에 30만가구의 주택을 짓는등 주택건설을 촉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종합토지세제의 도입, 대형주택에 대한재산세 중과, 양도소득세제를 정솔과세에서 누진과세방식으로 바꾸는등 부동산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조치를 실행에 옮기겠다고 벼르고있다.
이처렴 앞뒤가 일관되지 않는 정책운용자세가 바로 이번에 발표된「경제운용방향」의 문제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가지 기대를 걸게 하는 것은 이제까지 안정만을 염불처럼 외던 자세를 벗어나 안정보다는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밝힌 점이다.
이같은 자세의 전환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고용문제를 의식한 때문임은 물론이지만 그동안 국제수지나 물가에 지나치게 구애되어 경제정책운용이 탄력성을 잃고 그때문에 여러차례 정책의 실기를 초래했던 점을 생각하면 뒤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