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 → 도박사이트 대박…수갑으로 끝난 인생 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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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회장님 차’로 알려진 2억원 상당의 고급 외제차와 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1억원 상당)에서부터 1억7000만원대 삼성 UHD TV와 9500만원짜리 스위스 시계까지.

필리핀에 서버 두고 스포츠 베팅
4년간 총 2900억원 번 30대 구속

도박의 늪에 빠져 전 재산을 탕진한 뒤 월세 20만원짜리 반지하에 살던 박모(35)씨가 불과 4년 만에 인생 역전에 성공하면서 누리게 된 호화생활의 장식품 목록이다.

1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박씨는 2012년부터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해 최근까지 총 2900억원대를 벌었다. 이 기간 동안 박씨가 운영한 도박 사이트에서 오간 공식 판돈은 1조3000억원대. 공식계좌를 활용하지 않고 현금으로 오간 판돈까지 합치면 4조원에 달한다는 게 경찰의 수사 결과다. 그는 불법 수익금 일부는 외식·패션·부동산 등 국내외 사업자금으로 썼다. 주변에선 그를 ‘성공한 사업가’ 또는 ‘수완 좋은 투자의 귀재’라고 불렀다. 원래 박씨는 2011년까지만 해도 도박 사이트 이용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운영자였다.

카페 회원의 지인인 호주 동포 A씨와 만나면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A씨와 공모해 소위 ‘잘나가고 검증이 된’ 해외 스포츠 베팅 사이트 포맷을 국내에 그대로 들여오기로 사업계획을 세웠다. 외국과 달리 국내에선 스포츠 도박 사이트 운영이 불법인 만큼 사무실과 콜센터는 각각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에 두기로 했다.

이어 2012년 9월 ‘피나클’과 ‘텐벳’ 등 해외 유명 스포츠 베팅 사이트 4곳과 국내 총판 계약을 체결해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들 도박 사이트에서 진행되는 베팅을 그대로 중계하며 국내 도박 참가자들을 끌어모았다. 국내 회원이 1만8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도박 사이트는 유명해졌다. 그러자 박씨는 국내 총판 형태를 벗어나 직접 도박 사이트를 개설, 운영했다. 특히 이 사이트를 홍보하기 위해 영국 프리미어 리그 소속팀과 3년간 50억원에 달하는 스폰서 계약까지 맺었다.

경찰 수사 결과 박씨는 전직 프로축구 선수인 김모(33)씨 등 38명을 동원해 기업형 도박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이트 운영은 일괄적으로 필리핀 현지 직원들이 담당하고 프로그램 기획팀, 자문팀, 자금관리팀, 대포통장 모집·인출팀으로 나눠 사업 규모를 키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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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회원수를 폭발적으로 늘리기 위해 국내 유흥업소 소개 사이트와 펜션 소개 사이트 등을 해킹해 개인정보를 무더기로 빼낸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은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로 총책 박씨 등 11명을 구속하고 범행을 도운 2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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