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나라 고분발굴에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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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반도의 삼국시대 영향을 그대로 받은것으로 보이는 일본 나라(나양)현의 후지노끼고분발굴 작업이 3일 과학적 이유로 중단되었다.
지난 7월20일부터 이 고분을 발굴조사하고 있는 가시하라(권원) 고고학 연구소는 이 고분에서 나온 마구의 제작장소와 연대, 한반도와의 관계등을 더 연구한후 석관을 열 과학적인 준비가 끝나는 약1년뒤 발굴을 재개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 무덤의 주인공이 한반도의 귀족이나 왕족일 가능성이 커 일본 고대사 기술을 개작하지 않을수 없는 자료가 석관안에서 출토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인것으로 풀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이 무덤의 주인공이 일본 야마도(대화)조정의 세도가였던「소가노·이나메」(소아도목·?∼570)이며 출토된 마구로 미루어 이 설이 더욱 확실시되고 있다는 일부학계의 의견이 유력시되고 있다는데 있다.
학계에서는 그 이유로①이 고분이 「이나메」의 아들 「우마꼬」(마자·?∼626)의 무덤으로 알려진 석무대 고분과 닮았다는점 ②「이나메」의 증손 「이루까」(입록·?∼645)는 「소가노·구라쓰꾸리」(소아안작)라고도 불리며 마구의 제작과 관계가 깊다는점③금구의 디자인은 신라불교의 영향이 많다고 하나 「이나메」자신이 백제뿐만 아니라 신라의 불교도 받아 들이려 노력하고 있었다는 점등을 들고있다.
일본 고대사에서 「소가」씨 일족의 위치는 대단하다. 「소가」씨는 6세기께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
587년 권력의 중심부인 오오오미(대신·좌대신에 해당)직에 올라있던 「소가」씨는 보수파인 오오무라지(대연·우대신에 해당)「모노노베」(물부)와 불교공인 문제로 다투다 무력으로 「모노노베」의 세력을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로써 오오오미인 「소가노·우마꼬」는 생질녀인 여제「수이꼬」(추고) 천황을 세우고 정무는 역시 천황의 조카이며「소가」씨의 외손,사위이기도한 「쇼오도꾸」(성덕)태자를 섭정으로 삼아 담당케 하였다.
「수이꼬」정권은 일본에 처음으로 불교를 받아들여 불교문화를 발전시켰고 정치체제도 정비, 국가다운 모습을 구축했다.
「쇼오도꾸」태자에 의해 율령도 만들어져 이때를 율령국가로 부르게 되었다.
이무렵에 천황이란 칭호가 사용되고 천황의 권위를 위해 꾸며진 신화를 사실화하기 위해 『천황기』『국기』등의 사서가 편찬되기 시작했다.
「쇼오도꾸」태자가 622년에 죽은뒤 「소가」씨는 태자의 후손과 불화하여 그들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나까도미노·가마따리」(중신겸족·614∼669)가 주동이 된 쿠데타로 당시 「소가노·이루까」(소아입록)가 피살되고 645년 그 일족이 몰락했다.
「소가」씨와 「쇼오도꾸」태자가 이루어 놓은 일본 아스까(비조)의 불교문화는 당시 한반도의 영향을 그대로 말해 주는 것으로 앞으로있을 후지노끼고분의 석관개봉은 아직도 논의대상이 되고있는 한반도와 연루된 일본 고대사 구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보인다.
후지노끼고분은 담징의 금당벽화로 유명한 법융사 남서쪽 4백m지점에 있으며 직경40m, 높이8m의 원분이다..

<김징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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