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행위를 단속한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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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시가 또다시 재래시장 여덟곳을 강력단속한다는 소식이다. 단속의 근거법은 농수산물유통 가격안정법이고 명분은 가락종합시장으로의 상권 일원화라는 것이다.
가락시장과 기존의 재래시장들간에 빚어져온 마찰과 분규는 이미 새 시장개설때부터 두드러져온 것이어서 새삼스럽지는 않다. 보기나름으로는 이 문제를 단순한 이권의 이해상충으로 치부할수도 있고 유통근대화의 어려옴을 반증하는 단적인 자료일수도 있다.
지난6월 문을연 가락시장이 대형매장과 최신시설을 두루 갖춘 현대적 종합시장의 한 시범으로서 시민들의 기대를 모은것은 사실이다. 인구1천만명에 육박하는 대소비도시에서 유통과 가격의 굴곡이 심한 농수산물의 안정공급을 위해서는 이런 대형도매시장의 필요성은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매든 소매든간에 시장이란 원래부터 생산자와 소비자의 필요에 의해 생겨나고 발전하는 것이다. 주로 서울강북지역에 산재한 기존의 대형도매시장들이 오랜기간에 걸쳐 제각기 시장의 특수성을 갖고 발전하면서 그 나름의 존재이유와 안정된 상관행을 정착시켜왔다.
이런 재래시장들은 비록 쾌적하지 못하고 현대적 설비는 못갖추었어도 오랜기간의 거래로 거래질서가 상대적으로 더욱 안정되어있고 소비자들이 더 신뢰하는 시장들이다. 시장의 기본조건은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신뢰와 선택인데 지금까지 이들 재래시장이 온존되어온 기본바탕도 다름아닌 소비자의 선택이었다.
이같은 시장의 속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시장을 집중화·일원화한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이익에 배치되는 것이다.
농수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대형화해야할 필요성과 모든 기존시장의 일원화와는 전혀별개의 문제다. 오히려 시장의 일원화·집중화는 소비자 선택의 여지를 줄여 불이익이 될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강남인구가 아무리 많아졌다해도 주민의 지역분포로 보아 강북시장의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문제는 행정만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쾌적하고 모든 설비가 현대화된 대형 도매시장은 그런 시장의 이점이 소비자들에 의해 선택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법이나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성의 원리에 따라 다루어져야할 문제다.
새 시장이 여러측면에서 모든 시민들에게 그 경제성이 설립되면 저절로 선택될 것이다.
따라서 기존시장의 단속과 강제적 획일화는 바람직하지 않을뿐 아니라 민원의 소지가 될수 있고 나아가서는 소비자·생산자들에게까지 불이익을 줄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새시장의 정착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장의 경제성을 높이는 제반사업을 먼저 자체적으로 구비해가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시장의 선택은 관이 아닌 소비자가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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