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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38세 이후 난자, 40대 정자 노화 걱정 … 젊을 때 냉동 사례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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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우 센터장이 난자·정자 냉동센터에서 냉동된 난자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유리화동결법으로 난자 손상을 최소화한다. 프리랜서 임성필

재작년 10월 로이터통신에는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미국의 대표 기업인 애플과 페이스북이 전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2만 달러(약 2300만원)에 달하는 난자 동결 시술비와 보관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이다. 두 회사는 “우수한 능력의 여성이 회사 일로 결혼과임신을 미루고 있는 것은 큰 사회적 손실이다. 사회와 개인의 행복을 위해 난자 냉동비를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마리아병원 가임력보존센터 주창우 센터장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회사 지원금을 주는 곳은 없지만 학업,직장 일, 만혼(晩婚) 등으로 난자 냉동을 문의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마리아병원 가임력보존센터 주창우 센터장에게 난자·정자 냉동에 대한 궁금증과 가임력 보존법에 대해 들었다.

‘가임력보존센터’라 하니 생소하다.
“말 그대로 ‘임신 가능성’을 유지시켜 주는 곳이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20대에 정점을 찍고 이후 계속 노화된다. 생식세포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성 생식세포의 건강성은 20대 초반에 정점을 찍고 서서히 떨어지다 38세를 기점으로 크게 꺾인다. 예전처럼 20대에 결혼하던 시대에는 이런 센터가 필요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이 30대에 결혼한다. 30대 중반이나 40대에 아이를 가지는 부부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아쉽게도 30대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난자의 상태가 안좋아진다. 가능하면 35세, 늦어도 38세 이전에 건강한 난자를 냉동시켜 놓으면 나중에 임신을 시도하더라도 이전의 가임력을 거의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우리 병원엔 오래전부터 있어온 센터지만 난임 병원들에 생기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다.”
구체적으로 난자에 어떤 변화가 생기나.
“여성은 약 200만 개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를 한 달에 하나씩 배란해(실제 난자 하나를 배란시키기 위해 동원되는 난자는 수십~수백개임. 그중 하나만 최종 선택돼 배란) 사춘기가 되면 30~40만 개로 줄어든다. 가장 건강한 난자부터 배란된다. 생식의학자들이 언제까지 양호한 난자가 배란되는지 조사해 봤더니 35~37세까지였다. 이후 배란되는 난자는 세포가 노화돼 수정란 분열이 잘 안 된다. 미토콘드리아도 부족해 세포 분열을 촉진시키는 에너지가 부족하다. 임신 자체가 잘 안 될뿐더러 분열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문제가 생겨 기형아가 생기기도 쉽다. 자궁이 아무리 튼튼해도 배아가 나쁘면 임신이 진행되기 어렵다.”
정자도 나이가 들수록 노화된다던데.
“그렇다. 남성은 40대 이후에 정자의 건강성이 크게 떨어진다. 아기는 수정될 당시 정자의 DNA를 닮는다. 아무리 꽃미남도 40대에는 20대처럼 몸매를 유지할 수 없다. 40대의 정자로 임신하면 배 나오고 스트레스에 찌든 아빠의 체형과 몸매가 유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40대 이후의 정자로 수정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자폐증 위험이 6배 더 높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선진국에선 아빠의 정자도 냉동시켜 두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 병원도 최근 ‘자기 정자 은행’을 개설했다.”
암 등의 질환 치료를 앞두고 가임력 보존술을 받으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최근 20대 후반~30대 초반 사이에 갑상샘암이나 유방암에 걸린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 항암 치료를 하면 난소 조직이 많이 파괴된다. 난자의 유전자변이가 생기기도 한다. 그 때문에 항암치료를 앞두고 미리 난자를 냉동시켜 놓는 여성이 늘고 있다. 백혈병에 걸린 여아는 항암 치료 전에 난소 조직을 떼어놓기도 한다. 그밖에 루프스나 류머티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자, 난소종양·자궁내막증 환자들도 치료를 시작하면 난자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난자 냉동을 고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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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정자가 노화된 정도는 어떻게 알 수 있나.
“대부분 나이에 비례해 나빠진다고 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선 검사를 해보면 된다. AMH호르몬 검사법인데, 생리일에 관계없이 언제든 피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난소예비능(AMH) 검사법<그래픽 참조>이다. 남성은 간단히 정액검사만 해봐도 노화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난자 냉동은 어떻게 진행되나.
“배란일에 맞춰 채취한 뒤 급속 냉동한다. 최근 ‘유리화동결법’이 개발돼 난자 냉동의 새 전기를 맞았다. 동결 과정에서 날카로운 얼음 결정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게 핵심인데, 이게 가능해진 것이다. 최근 여러 연구논문에 의하면 동결보존한 난자로 수정할 때 성공률이 신선한 난자로 수정했을 때와 비교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게 나왔다. 특히 연구원의 노하우가 핵심인데, 우리 병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시험관시술을 했고, 시설 투자가 많아 대학병원에서도 환자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예전에는 항암치료를 앞두고 오셨던 분이 많았는데 최근엔 대학원 진학이나 해외 유학 등을 앞두고 냉동하러 오는 여성들이 많다. 빨리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게 가장 좋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미리 난임 전문의와 상담해 보기를 권유한다.”

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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