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항공편이용 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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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이 남북적십자회담 요원들의 왕복교통편을 항공기로 하자고 한 제의는 회담 자체와는 무관한 평지풍파가 될 가능성이 있다.
김상협 한적총재가 지적한 것처럼 지금까지의 적십자회담 진행과정에서 양쪽이 이용해온 육로교통에는 별다른 불편이 없었다.
육로로 한나절이면 충분한 거리를 항공편으로 전안하면 오히려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시켜 일을 복잡하게 할뿐이다.
적십자회담이 그리 자주 열리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의 예로 보면 통상 3개월에 한번인데 굳이 복잡한 항공편을 이용해야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만일 북한이 굳이 항공편을 원한다면 평양에서 개성이나 판문점까지, 즉 북한의 관할 영역안에서 항공편을 이용하면 되지 않는가. 그것을 굳이 우리 영역에까지 적용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떠오르는 것은 북한이 그 기회를 이용하여 남한에 대한 항공정찰을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다.
공산측은 자유진영에 비해 위성정찰시스팀이 뒤져 항공정찰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군사시설을 지하화한 북한이 그런 항공정찰의 취약점을 남북회담을 통해 보완하려 한다면 이는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며 비극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북한의 군부가 남북대화를 당초부터 괴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땅굴은 바로 북한군부의 강경파들이 70년대초의 남북대화에 반발하여 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교통편마저 군사목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회담의 진전은 중대한 장해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북한이 남한의 군사정보를 얻고 싶다면 유엔군측이 정전회의에서 제의한 쌍방 군사훈련의 상호참관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북한만 동의한다면 이 같은 훈련참관과 남북 군사요원의 상호방문은 언제든지 실현될 수 있는 상황이 이미 마련돼 있다.
평양당국은 지금까지 북한에 지상낙원을 건설해 놓았다고 내외에 선전해왔다. 우리도 급속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널리 자랑해 왔다.
그런데 그처럼 자기네 선전에 열중해온 북한이 남한을 몇 차례 다녀간 후 자기네 「지상낙원」의 실상을 보기 어렵게 하는 항공편을 이용하자고 제의해 왔다.
이것은 지난9월의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의 방문지를 서울과 평양으로 국한시키자고 끈질기게 고집하던 사실과 연관시켜 보면 그 저의는 더욱 선명해진다.
적십자회담은 순수한 인도적인 바탕위에서 이산인의 고통을 해소하고 민족분단의 비극을 줄이는데만 역점이 두어져야 한다.
거기에 정치적인 의도나 군사적인 목적이 개입된다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만 자극할 뿐이다.
우리는 북한의 항공편 제의와 한적의 거부가 적십자회담의 지연 또는 방해요인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항공편은 앞으로 회담이 잦아지고 교류가 많아진 다음에나 고려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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