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장 선출 이변… 진상은 무엇인가 | 민정당 산표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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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변을 낳은 10.28 국회 부의장 선거 파동이 민정당의「계획된 작전」, 지도부의 지시를 어긴 항명, 지도부의 방만한 지시, 또는 「우발적인 단순 사고」중의 어디에 해당되는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야당표의 분산도 문제이지만 국회 부의장 당선의 절대적인 관건을 쥐고 있는 민정당측이 당초의 지지 약속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대량 이탈 현상은 쉽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민정당측은 「단순 과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2대 총선 후 야당에 시달려 온데 대한 반작용, 특히 김대중씨에 대한 반감과 당 지도부의 소극적 협조 사이의 허점에서 우발적인 사고가 저질러졌다는 변명이다.
그러나 일사불란, 상명하복의 여당 체질로 보아 과연 「단순 과실」이나 「항명」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그런 의혹을 뒷받침 할 만한 석연 찮은 구석이 없지 않다.
첫째 당 의사와는 달리 K의원 등 호남 출신 의원들이 동향의 조연하 의원지지 운동을 호남 출신 의원과 농수산위 소속 민정당 의원들을 상대로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당 지도부측은 『지역적으로 똘똘 뭉쳐 어쩔 수 없더라』고 했을 뿐 적극 저지하는 기색이 없었다.
둘째 당론이 일반 의원들에게까지 하달된 흔적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일부의원들은 『아무 지시를 못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중간 당직자들이 건성으로 연락하고 말았다는 혐의가 농후하다.
세째 당직자들은 「일반 의원들의 김대중씨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고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이에 대해 아무런 설득 조치가 취해진 적이 없었다.
이같은 이유들로 인해「우발성」사고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고 심지어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당내의 「위계」라고 보기보다는 민정당 지부까지 따돌린 당외작전이 아니겠느냐고까지 의심하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는 청부·여당안의 심각한 사태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획된 작전」으로 보기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우선 무엇보다도 1백40여명이나 되는 소속 의원을 두 차례의 투표에서 어떻게 의도된 결론에 맞춰 적절히 배정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신민당 소속 1백명의 의원이 어느 정도 단합을 보여줄지 모르는 상태에서 소속 의원의 얼마를 이용희 후보에게, 또 얼마를 조연하 후보에게 돌리느냐 하는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또 이런 많은 사람을 상대로 은밀한 「작전」을 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다음으로 당 간부들의 사전 사후의 움직임이다. 의의의 결과가 나오자 노태우 대표위원 이하 간부들은 경악과 당황을 숨기지 못한 게 사실인데, 이들도 모르는「작전」수행은 현재의 정부·여당 사정으로 보아 있기 힘든 일이다.
이런 점으로 미뤄 「계획된 작전」이란 입론도 현재 상황으론 성립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민정당이 말하는 것처럼 순전히 「우발적」인 결과일까. 그것도 또 아닌 것 같다.
우선 여당안에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산표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만 봐도 단순 우발이란 말은 설명이 안 된다.
결국 △「방만한 지시」△간부들의 모호한 태도△부분적으로 있은 조직적인 산표 움직임△민정당 의원들의 일반적인 무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현재로서는 가장 그럴듯한 설명으로 들린다.
민정당은 간부·평의원 할 것 없이 이번 부의장 선거를 대 김대중씨 관계라고 보고 있었다. 김대중씨에 대해 반대하고 그를 몰아세우는 정치가 민정당에서는 좋은 정치, 점수 따는 정치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김대중씨가 지명한 이용희 후보를 밀라는 것이 당논 이었지만 김씨를 반대해야 한다는 압도적인 여당 안의 인식에 비해 이런 당론은 다분히 형식적이라는 느낌을 많은 의원들이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이 후보 지지를 통고 받은 상당수 상임 위원장과 시도 지부장들 역시 이 지시를 시큰둥하게 여겼고 지시한 간부들도 그리 성의 있게 지시를 강조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방만한 지시」였던 것이다.
이 지시가 존중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요인은 일부 당 간부에 대한 일부 군 출신 상임 위원장 등의 반발이었다.
다시 말해「영」이 제대로 서지 않았고, 그런 과정에서 지시를 어겨봐야 괜찮겠구나 하는 무드가 조성됐던 것이다.
민정당 간부들은 이런 사정을 구체적으로 또는 대외에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그들 역시「의도」한 바는 없었지만 지시가 느슨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따지면 지시가 느슨했건 아니건 간에 지시는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서「항명」사태는 난 셈이며, 신민당에 대한 위약의 책임 역시 벗어날 길이 없다.
다만 「항명」 대목은 이번 투표에 관한 당명 차원을 넘는 집권 세력의 김대중씨에 대한 인식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더 「순명적」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며 그런 점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뿐이다.
이번 사건의 과정을 통해 민정당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등장한 것은 당 지도력의 빈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당 지도부의 지시가 일반 의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일반 의원들이 당 지도부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현재의 노태우-정순덕-이세기 체제의 허점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그동안 민정당 내에 미묘하게 진행되는 분기화의 움직임과도 관련 있고 또 현 지도부의 당운영 원내 전략에 대한 불만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인 책임 규명 문제는 아무도 선뜻 꺼내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노 체제가 전반적인 정치 일정과의 관련에서 거론되어야 하는 미묘함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민정당측도 야당과의 수습 대화에 나서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당내 정비를 꾀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인 것 같고 그 당내 정비 방식에 따라 여권내에 번질 파문의 크기도 달라질 것이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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