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안에 대우조선해양의 여신건전성 등급을 하향 조정한다는 내용은 없군요. 그게 핵심 아닌가요?”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이 23일 발표한 혁신방안에 대한 시중은행 여신담당자의 공통 반응이다. 두 국책은행이 은행업 감독규정 상 5등급(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중 ‘정상’으로 분류한 대우조선 채권을 ‘요주의’(채권 회수 잠재 위험요인 존재)’로 한 단계 낮춰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5조원대 손실이 공개된데다 감사원 감사에서 1조5000억원의 분식회계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미 신한·KB국민은행이 대우조선 여신등급을 요주의로 내린 데 이어 다른 시중은행도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도 산은·수은은 “조선업과 지역경제·국가경제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며 정상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두 은행의 대우조선 여신이 13조원(산업은행 4조원, 수출입은행 8조9903억원)으로 금융권에서 가장 많기 때문에 요주의로 내리면 경제 충격이 크다는 ‘대마불사’ 논리다.
이는 시장의 다수 여론과는 동떨어진 주장이다. 해외선주·투자자는 이미 선박건조 발주나 주식·채권 투자 때 대우조선의 신용도를 낮춰서 반영하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높은 부채비율(지난해 말 7308%)을 감안해 대우조선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BB)으로 강등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여신등급을 요주의로 내린다고 해서 대우조선의 수주 활동이 더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산은·수은이 ‘방만경영을 혈세로 메운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대우조선 여신등급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요주의 등급으로 바꾸면 두 은행은 대출금의 7~19%에 해당하는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지금(산은 14.6%, 수은 9.89%)보다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BIS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한국은행에 대규모 자본확충을 요청해야 한다.
산은·수은 입장에선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지난해 10월 결정을 스스로 뒤집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여신등급을 요주의로 내리면 아직 집행하지 않은 1조원은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 때문에 대우조선의 여신을 지금처럼 정상 등급으로 놔두면 두 은행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라도 대우조선의 여신 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방만경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바로 국책은행 혁신의 첫걸음이다.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uni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