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하지 마” 일본 기업가 최고 장벽은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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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창업의 최대 걸림돌은 아내와 가족이다.”

WP, 창업 꺼리는 일본 문화 분석
“대기업 연봉, 안정적 고용 선호”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창업에 회의적인 일본 문화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전세계가 가벼운 몸집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스타트업에 주목하고 있지만 ‘경제공룡’ 일본만은 뒷걸음질치고 있는 이유를 특유의 문화에서 찾은 것이다.

WP는 22일(현지시간) ‘일본 기업가의 특별한 도전: 아내의 반대’란 제목의 인터넷판 기사에서 “대부분 선진국의 창업가들이 투자자 설득과 같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만 일본은 창업 자체를 반대하는 아내(wife block)와 부모(parent block)에 가로막혀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대기업에서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는 ‘재패니즈 드림’과 비교하면 창업은 비정상적인 것”이라며 “일본에는 실리콘 밸리가 없고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도 없다. 워크맨과 게임보이(휴대용 게임기) 신화로 대표되는 일본적 혁신도 소니·닌텐도 같은 대기업 테두리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활동 조사기관인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의 각국 초기 창업활동 비율(TEA) 조사에서도 일본은 3.8%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일본보다 초기 창업활동이 뒤진 나라는 남미의 빈국 수리남(2.1%) 뿐이었다. 이웃 국가와 비교해도 중국(14%)은 물론 한국(6.9%), 대만(7.3%)에도 뒤졌다.

창업에 회의적인 사회 분위기도 일본의 스타트업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게 WP의 분석이다. WP는 “미키타니 히로시(三木谷浩史)·라쿠텐 창업자)나 손정의(소프트뱅크 창업자) 같은 인물이 있지만, 일본인들은 창업이라고 하면 회계부정·주가조작으로 물의를 빚은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라이브도어 창업자)를 떠올릴 정도로 부정적 인식이 높다”고 분석했다.

창업 문턱을 낮추는 다른 나라와 달리 ‘산더미 같은’ 서류를 요구하는 정부의 관료주의와, 창업 대출에 인색한 은행도 문제로 꼽았다. WP는 “벤처 캐피탈이나 액셀러레이터(창업 기획자) 같은 개념 자체가 없는데다 위험을 감수하길 꺼려하는 문화도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창업 활성화를 핵심정책으로 추진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제구조개혁, 이른바 ‘세 번째 화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WP의 전망이다. 아베 내각은 2013년부터 후쿠오카를 창업 특구로 개발하는 등 창업 활성화를 통한 경제부흥에 공을 들여 왔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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