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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격차, 중소기업 근로자부터 챙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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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은 어느새 일상화됐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3월 기준으로 11.8%다. 전체 실업률(4.3%)의 세 배에 육박한다. 외환위기로 국가 전체가 흔들릴 때 기록한 12.2% 이후 최고치다. 잠재구직자까지 합치면 20%를 훌쩍 넘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분석이 나올 때면 흔히 청년들에게 던지는 말이 "눈높이를 낮춰라"다. "열정만 있으면 못할 게 뭐가 있나"라는 얘기도 한다. 청년들이 너무 대기업이나 공기업만 바라본다는 질타를 은연 중에 담아서다. 그런데 이런 말을 대놓고 하기엔 민망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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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지난해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그런데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 총액을 100으로 봤을 때 중소기업 정규직은 49.7에 불과했다. 번듯한 정규직끼리 비교했는데 회사가 얼마나 큰 지에 따라 임금이 두 배 넘게 차이가 난다. 2008년 관련 통계를 낸 이후 대기업 정규직 대비 중소기업 정규직의 임금이 50% 밑으로 떨어진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더 걱정스러운 건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까지는 조금씩 좁혀졌다. 하지만 2013년부터 격차가 확 벌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눈 높이를 낮추라"고 했다 "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타박을 듣기 십상이다. 실제로 최악의 정년 취업난이라고 하는데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고 있다, 한 취업포털이 올해 상반기에 채용을 실시한 700여 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79.2%가 계획한 인원을 뽑지 못했다. "응시자가 너무 적어서"라는 이유를 가장 많이 댔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눈길도 안 준다는 얘기다.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다. 대기업의 비정규직 임금이 중소기업 정규직 임금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대기업 안에서만 본다면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 임금이 65% 수준으로 많이 낮다. 정치권과 노동계가 차별의 상징으로 비정규직을 전면에 내세울 만하다는 생각이 들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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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대기업 비정규직의 임금과 중소기업 정규직을 비교하면 그런 주장이 머쓱해진다. 대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이 중소기업 정규직 임금보다 24%나 많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비정규직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이쯤되면 실제로 누가 약자인지 명확해진다. 대기업 정규직은 전체 근로자의 10.6%에 불과하다. 대기업 비정규직은 1.7% 뿐이다. 진짜 사회적 약자는 이들을 뺀 87.6%의 중소기업 근로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선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흡사하다"는 한탄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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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산업현장 상황은 이러할진데 왜 이게 부각이 되지 않는 걸까. 어째서 대기업의 비정규직만 고용시장 이중구조의 상징으로 포장된 걸까. 여기에 대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조의 강력한 힘이 우산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는 기득권을 공고히 하고 또다른 권리를 찾는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길도 연다. 노조를 만들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 근로자는 그런 상황이 부럽기만할 뿐이다. 그렇다고 정치권이나 정부가 중소기업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거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맞춤형 정책을 내놓은 적도 없다. 목소리 큰 쪽에 고개를 돌리고, 그들을 달래고 어르는 데 정신이 팔린 탓에 중소기업에는 정책의 햇살보다는 그림자만 드리웠다. 올해 국회의 정당 대표연설도 비정규직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젠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고용형태를 가지고 벌이는 논란의 구조를 바꿀 때다. 회사의 규모에 따라 임금이 확 벌어지는 불합리한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독일, 일본과 같은 외국에선 보기 힘든 회사 크기에 따른 임금의 이중성을 따지고, 고쳐야 한다. 후려치기가 없는 공정한 거래 관행과 동반성장, 대기업 노조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중소기업 근로자가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90%를 채우고 있다. 1.7%의 대기업 비정규직 얘기만 할 때가 아니다. 중소기업 근로자가 없으면 산업기반이 무너진다. 구조조정의 가장 큰 피해자도 그들이다. 청년들이 가고 싶은 중소기업으로 만드는 것, 그게 진짜 격차 해소이고, 고용시장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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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소기업 격차 왜 벌어지나>
대·중소기업 간 격차는 생각보다 심각하고 쉽게 줄이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기술발전이나 글로벌 경제 변동에 따른 연구개발(R&D)투자, 경영혁신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따라가기 힘들다. 여기서 생산성과 지불능력의 차이가 발생한다. 또 대기업의 우월한 영향력에 기반한 원·하청 관계는 경기 변동의 충격을 상당부분 하청업체나 협력사가 짊어지고, 떠안아야 한다. 이런 경영여건은 기업별 임금수준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이게 격차로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노조조직구조는 이 격차를 넓히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전체 노조조직률은 10.3%이다. 1000명 이상 노조에 속하는 조합원은 전체의 73%에 달한다. 노조활동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강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생산성 향상 이상으 임금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하청 관계에 갇힌 중소기업 근로자는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고, 복지혜택에서도 배제돼 왔다. 이런 경향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이 핵심부문만 직접 고용하고, 나머지는 외부화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고착화 양상을 띈다.

그렇다고 더 나은 직장으로 옮겨갈 수 있는 사다리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대기업 정규직이 10년 2개월인 반면 다른 부문은 4년 4개월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2008~2010년 대졸자 직업이동경로를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정규직에서 대기업 정규직으로 옮긴 경우는 6.6%에 불과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이 대기업 정규직으로 간 경우는 2.8%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