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식민지 면한 것은 조기개화·열강도움 때문"|강만길교수, 한·중·일등 동양3국 근대사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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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양3국인 한국·중국·일본은 근대이후 각각 다른 길을 걸었다. 한국은 완전 식민지화했고 중국은 반식민지화했으며 일본은 식민지화를 면하고 제국주의국가가 됐었다.
이제 다시 하나는 자본주의체제와 공산주의체제로 분단되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화했으며 나머지 하나는 자본주의화했다.
중세까지 하나의 문화권속에 있었던 이들 3국이 왜 크게 다른 길을 걷게 됐을까.
강만길교수(고려대·한국사)는 『그 원인을 해명하는 연구는 한국·중국에선 거의 이뤄지지 않은 반면 일본학계만 어느 정도 성과를 쌓고있다』고 말했다 (『오늘의 책』가을호). 그는 『한국학계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은 역사학이 아직 식민지화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강교수는 일본학자들의 학설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먼저 개항이전 일본사회가 한국이나 중국보다 앞서있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본의 유물사관 경제사학자들 중 특히 「핫또리」(복부지총)를 중심으로 일본은 한국·중국과 달리 문호개방이전에 이미 내재적 발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도꾸가와」막부 말기에 「매뉴팩처 시대의 단초적단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몬호 개방이전의 이 같은 내재적 발전과 이후의 외국자본주의와의 접촉이 합해져서 명치유신을 이뤄 식민지화를 면하고 근대자본주의국가로 발전해간 반면 한국과 중국은 문호개방전에 아직 매뉴팩처 시대에 들어가지 못했고 상업자본의 활동만이 지배적이다가 문호개방과 함께 외국자본주의의 침입을 받아 매판화하고 자율적 산업혁명을 이루지 못한 채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로 떨어졌다는 논리다.
강교수는 그러나 2차 대전 이전에 세워진 이 논리는 대전 후 각국의 역사학 발전으로 깨졌다고 말했다. 문호개방전 일본의 「매뉴팩처 시대」설에 상당한 회의가 나타나고 한국과 중국의 중세사에 씌워졌던 「정체·후진성론」이 벗겨져 감에 따라 결국 문호개방 이전의 3국은 역사적발전 단계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이에 「도오야마」(원산무수)는 1960년대 전반, 일본이 식민지화를 면한 이유로 첫째 문호개방 무렵인 1860년대 외국의 압력이 적었던데 있으며 둘째 청일전쟁의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명치유신부터 청일전쟁전까지 서구 자본주의 국가는 경제적으로 산업자본에서 독점자본단계로 접어드는 과도기인데다 정치적으로 국내 및 식민지 민중의 항쟁이 높아져 이에 대응하기에 여념이 없을 때여서 일본은 명치유신을 하고 독자적인 국내개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지무라」(미촌수수)는 「도오야마」의 설을 보완하면서 후진국의 중요한 열쇠는 문호개방 후 정치변혁의 각 단계에서 외부압력에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견뎌냈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도오야마」와 「가지무라」는 일본이 식민지를 면한 이유가 결코 아시아의 다른 민족보다 우수했기 때문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강교수는 일본이 식민지화를 면한 이유로 외압의 강도나 문호개방시기의 차이등도 중요하지만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요인으로 일본이 일찍부터 침략주의를 채택했고 이를 서구열강, 특히 영국과 미국이 도왔다는 점을 들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세계정책으로 표현되는 침략전쟁의 앞잡이가 돼 이웃 민족을 침략한 사실이 곧 일본이 식민지화를 면한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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