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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해운동맹 가입 한진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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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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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자금 지원을 둘러싼 채권단과 한진그룹의 기싸움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는 채권단이 “경영정상화 시 우선매수청구권을 줄 테니 1조원을 지원하라”며 조양호(사진) 한진그룹 회장을 압박하는 형국이었다.

채권단 “한진해운에 1조 지원”요구
찬성카드로 압박 수위 낮추기 추측

그런데 한진그룹에 새 협상 카드가 생겼다. 현대상선 경영정상화의 열쇠인 국제 해운동맹 가입 결정권을 한진해운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이달 초 주주총회에서의 출자전환 의결로 사실상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간 반면 한진해운은 아직 한진그룹이 경영권을 갖고 있다.

19일 금융당국과 채권단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국제 해운동맹 재편 과정에서 새로 생긴 ‘디얼라이언스(THE Alliance)’에 이달 초 가입 신청서를 보냈다. 다른 주요 동맹(2M·오션)은 이미 회원사 구성을 마친 반면 디얼라이언스는 아직 추가 신청을 받고 있다. 디얼라이언스에 가입하려면 기존 6개 회원사인 하팍로이드(독일), 양밍(대만), NYK·MOL·K-라인(일본), 한진해운(한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일찌감치 찬성 의사를 밝힌 4곳과 달리 한진해운·K-라인이 입장 표명을 유보하면서 채권단의 속을 태우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한진그룹이 현대상선의 해운동맹 가입을 ‘지렛대’ 삼아 채권단의 압박 수위를 낮추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상선 가입을 돕는 대신 한진그룹의 지원자금 규모를 줄이고 채권단의 신규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채권단은 ‘신규 자금 지원 없이 자체 생존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가입해도 한진해운과 노선이 별로 중복되지 않는다”며 “일본 K-라인은 그렇다 치고 같은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의 동업자 정신이 아쉽다”고 말했다.

특히 채권단은 ‘빨래론’으로 한진해운의 해운동맹 ‘지렛대’ 논리에 맞서고 있다. 현대상선이 세탁이 잘 돼 깨끗해지고 있는 옷이라면 한진해운은 아직 때묻은 옷이라는 설명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얼룩이 남아 있는 옷을 다시 입을 수 없는 것처럼 한진해운이 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빨래론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원칙에도 적용된다. 이 관계자는 “빨래가 잘 되고 있는 현대상선 세탁조에 한진해운을 넣으면 둘 다 더러워질 뿐”이라며 현 시점에의 합병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둘 다 깨끗한 옷이 되면 그때는 한 옷장에 넣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합병은 한진해운·현대상선이 모두 경영정상화가 됐을 때 가능하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금은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다 꺼낸 상황”이라며 “당분간은 한진그룹의 입장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 보겠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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