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시뇨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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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의 사랑을 받던 여우「시몬·시뇨레」가 지난달 30일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프랑스 최고의 여우일뿐 아니라 정치적 신념을 지닌 용기있는 여인이었으며, 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이기도 했다.
「시뇨레」의 값진 삶의 자취는 77년에 발표한 그녀의 자부적 소설 『추억은 언제나 과거일뿐』에 잘 묘사되어있다. 발매되자마자 일약 베스트 셀러가 되어 60만부이상 팔렸다.
그녀로서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파리의 카페 플로르에서 조각가「자코땟티」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시인「자크 프레베르」와 밀어를 나누고, 가난뱅이 화가「조르지 브라그」에게는 그림 물감을 사주고, 명우「게리 쿠퍼」와 충을 추었던 이야기들이 깔려있다.
또 한편으로는 소련 탱크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침공할때 모스크바로 달려가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소리 높여 항의하고,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에 나서고, 공산주의자로 전향한 대신인 「루이아라공」을 내몰았으며, 한때 남편의 정부였던 「마릴린 먼로」의 죽음에 대해 따뜻한 마음으로 조의의 글을 바치기도 했다. 이 자숙전이 베스트 셀러가 된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금년초에도 『아듀, 볼로디아』라는 대하소설을 발표했다. 1차대전 이후 유태계 러시아시민의 두 가족이 파리에 정착했다가 다시 2차대전때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성공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진 「시뇨레」는 아무래도 영화쪽이다. 60년대초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그녀의 출연 영화 『산장의 밤』(원제=Room at the Top)을 잊을수 없다. 「로런스·하비」와 공연한 이 영화에서 출세만을 생각하는 연하의 남자에게 배신당하는 여인의 모습을 열연하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방기도 했다. 이밖에도 남편이였던 「이브·몽탕」과 함께 출연한 『생사의 고백』(69년), 「르네·클레망」감독의 대작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66년), 「마르셀 카르네」감독의 『테레즈의 비극』(53년) 등이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다.
그녀는 죽기 얼마전까지 센강이 내려다 보이는 파리의 한 아파트 1층에서 기거했는데, 이때 한 말이 있다. 『후회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꼭 현명하게 살아왔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그러나 이런 말을 남긴 한 여우의 즉음 앞에 새삼 우리의 가난한 삶을 되돌아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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