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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모짜렐라 치즈는 물소젖으로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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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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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천재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윤병언 옮김, 책세상
576쪽, 2만3000원

부엌에서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든다. 귀찮으면 이탈리아 식당에서 주문한다. 우선 가로로 자른 플럼 토마토 위에 물소 젖으로 만든 물렁한 치즈인 ‘모짜렐라 디 부팔라’를 잘라 얹으면서 차례로 소금 후추를 뿌린다. 그 뒤에 수저를 이용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기름을 조금식 균일하게 끼얹은 뒤 향이 그윽한 허브인 생바질 잎을 얹으면 완성이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요리다. 새하얀 모짜렐라 디 부팔라 치즈와 붉은 토마토가 짙은 녹색의 바질 잎, 옅은 녹색의 올리브기름과 대조를 이루며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미각과 시각, 그리고 후각까지 동시에 만족시키는 조화로운 요리다. 담백한 모짜렐라 치즈의 개운한 맛이 토마토와 바질의 향과 어우러지며 입안을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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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뽑은 마카로니 다발을 빨래처럼 널어서 말리고 있다. 마카로니는 특히 나폴리가 유명했다. [책세상]

이탈리아 음식 문화 저널리스트인 지은이는 이 모짜렐라 물치즈의 역사를 교황 피오5세의 요리사였던 바르톨로메오 스카피가 1570년에 쓴 자료에서 찾는다. 모짜렐라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헌이다. 이전에는 물소젖으로 만든 이 치즈를 모차(mozza)라고 불렀는데 손으로 원하는 크기만큼 잘라내서(mozzare)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카피의 문헌에는 ‘로마의 신선한 모짜렐라’라는 글귀가 등장하는데 지은이는 이를 분석한다. 당시 교황청은 로마에서 남쪽으로 70㎞ 쯤 떨어진 늪지대에 살던 물소들의 젖으로 만든 모짜렐라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문헌에는 ‘우유 꽃(neve di latte)’이라는 표현도 등장하는데 이는 물소가 아닌 소의 젖으로 만든 치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은이의 추정이다. 1942년까지는 물소젖으로 만든 것만 모짜렐라라고 불렀다.

우유로 비슷하게 만든 것은 우유 꽃으로 불렀다. 하지만 1942년 이탈리아 북부의 식품업자들이 로비해 우유로 만든 것도 모짜렐라로 부를 수 있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때부터 이 치즈의 원료가 물소 젖인지 우유인지를 표시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음식의 ‘미시세계사’가 아닐 수 없다.

지은이는 이런 식으로 이탈리아 음식과 음식재료의 정수를 탐험한다. 겉만 익힌 쇠고기 요리인 카르파초, ‘악마의 유혹’이란 별명의 발라 먹는 초콜릿 누텔라, 사람의 혼을 빼놓는 디저트 티라미수 등의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맛있고 유익한 ‘이탈리안 나이트’의 입담이 거침없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이탈리아 요리에도 해당한다.

황금 만큼 귀했던 식재료 ‘모데나 발사믹 식초’

‘지금은 ‘아세토 발사미코 디 모데나(Aceto Balsamocao di Modena)’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모데나산 발사믹 식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를 볼 수 있는 곳은 모데나 근교뿐이었다. 모두가 아껴 먹으며 지붕 밑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귀한 식품재료였다. 2000년에 와서야 비로소 상업화됐다. 현재 ‘모데나와 레조 에밀리아 전통발사믹식초협회’에 소속된 생산자들은 ‘12년 숙성’과 ‘20년’ 숙성의 두 종류를 100mL 단위로 작은 호리병에 담아 판다. 귀한 음식 위에 눈물 방울만큼 뿌려 먹는다.

그런데 우리가 수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데나산 발사믹 식초는 ‘전통(tradizionale)’ 표시가 없는 일반 발사믹 식초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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