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후명·이균영·박기동 등의 최근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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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시에서는 민중이라든가 통일·공동체 등 사회 현실에 대한 절박한 외침이 큰 목소리로 울려오는데 반해 70년대에 이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었던 소설들이 오늘날 개인주의라든가 내면성의 중산층 의식 체계로 비켜나고 있는 80년대 문학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원인은 어떻게 분석되어야하며 여기에 어떤 의미 부여와 평가를 가할 수 있을 것인가? 몇해 전의 이러한 자문에 대한 대답을 아직 가려내지 못한 필자에게, 최근의 몇 권의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집들은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제기해주고 있다. 결국 비평가는 작품에 선행하며 지도하는가 뒤따라가며 그것의 함의를 해명하는가 하는, 보다 큰 문제까지도 연쇄되는 이 측면에 대한 성찰은 여전히 유보시킨 채, 윤후명과 이균영의 소설집 『부활하는 새』(문학과 지성사)와 『바람과 도시』(문학사상사), 박기동과 안정효의 장편 『더 작은 사랑노래』(2권, 정음사)와 『가을바다 사람들』(고려원)에만 한해서 훑자면, 사랑은 문학의 끝없이 반복되는 주체이면서, 그렇게 반복되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이 세계의 불화의 인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실들에서 사랑은 모두 실패하는 것이다.
그 실패하는 사랑에의 접근은 제각각 달라 안정효에게 있어서는 오늘의 상업주의 구조 속에 쫓겨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의 사탕이 사실은 진정 그런 느낌을 가져보지 못한 거짓된 사랑에 불과했고 윤후명의 그것은 이미 사람이 끝나버린 불모의 관계예서 그것의 「부활」을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린 황량한 모습이었다.
이균영의 사랑은 인간과 인간의 인격적·서정적 만남이 어긋나는데서 빚어지는 사랑의 균열로 초점을 모으고 박기동의 사랑은 그것의 실패를 통해 자아의 성숙을 키워 나간다는 성장소설적 플롯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 모두는 사소설적이면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문체(윤후명), 집요한 내면적 성찰(안정효), 감상적인 서술(이균영), 경쾌하면서도 페이도스를 깔고 있는 진행(박기동)으로, 오늘의 우리가 사람의 부재 속에 자아를 상실한 서글픈 심상에 젖어들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안정효의 주인공은 바다에서 익사하고 윤후명의 인물들은 끝내 사랑의 회복에 실패하여 무의미한 일상으로 되돌아오며 박기동의 여주인공은 사랑을 거부하고 이균영만은 다행히 마지막에 화해의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문제는 결말에 있지 않다. 쉽게 화해함으로써 사망의 진의가 사라져버린 이균영과 회의와 반성에 젖어 그것에 빠져버리는 안정효에 비해, 대중소설적 취향 속에서 사랑을 거부하고 거부당하는 박기동의 『더 작은 사랑노래』의 불화를 통한 자아의 성장은 더욱 돋보이며, 윤후명의 『부활하는 새』의, 사랑을 통한 초월의 좌절은 우리의 보편적인 내면적 우수로 이 세계를 바라보게 만들던 사방은 쉽게 이루어 질 수도 있고 쉽게 결렬될 수도 있으며 그것을 주제로 한 소실이 쉽게 화해할 수도 있고 쉬운 결말로 유도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 세계와 인간의 근원적인 구원과 사탕은 결코 그같은 「쉬움」을 허용하지 않고 완강하게 버티며 사랑과 화해의 성취를 훼방놓는다. 윤후명의 두 번째 창작집은 바로 그러한 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그의 우수가 존재론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도 그것에서 연유한다. 그가 근래의 단편들에서 조금씩 종교 속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이런 문맥에서 조심스레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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