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통가락으로 신명 되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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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태초에 놀이가 있었다.』
시청 앞,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마당세실극장 어귀. 아득히 풍물치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언뜻 어느 논자의 그 말이 생각났다. 신명이 많음으로 해서 살아남았는지도 모를 우리의 조상들이 아닌가.
사물놀이 마당패 「뜬쇠」의 창단공연 「굿판 1985」가 벌어지고 있는 마당세실극장. 극장 한쪽 벽에 『우리의 가락은 백성들의 밥과 김치다』라고 쓰여있다. 거기 「무대 위의 농악」을 본다.
기획자 이영윤씨-『사물은 꽹과리·징·북·장구를 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느 고을에나 있던 것들이다. 아무나 치고 놀았다. 밥과 같은 존재였다. 이제 마당에서 하던 것이 무대화됐다. 모양이 왜소화됐다. 저 무대에서 다시 마당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80년대 들어 사물놀이의 세계적(?) 붐의 발상지이기도한 이곳에 7명의 잡이들이 모여 마당패 「뜬쇠」를 만들었다.
전수덕(35·강구) 김충신(32·장구) 강대승(32·꽹과리) 박덕근(32·징) 정철기(24·꽹과리) 김복만(22·북) 권칠성(18·북)씨.
모두가 한결같이 2∼3대에 걸친 예인집안의 출중한 잡이들로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뜬쇠가 되기를 열망하고있다.
뜬쇠란 농악대를 비롯한 민속연희 공연자중 기예가 뛰어난 대가에게 붙여졌던 이름.
꽹과리·북·장구가 각 2명에 징 1명. 4명의 잡이들이 나서던 종래의 사물놀이 편성을 깨고 독특한 편성의 연주기법을 시도했다. 사물놀이가 보여주는 음악적인 섬세함과 조화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규모를 키우고 가락의 다양성과 대화성을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당패 「뜬쇠」를 이끌고있는 전수덕씨는 호남 우도농악의 신화적 존재이자 현재 유행하고있는 설장구 가락을 만들어낸 전사섭씨(73)의 아들로 5세 때부터 장구채를 잡았다. 아버지는 지난 24일 응원을 나왔다. 그날 특별히 무대에 올라 수제자이기도 한 아들과 함께 쌍장구의 오묘한 맛을 보여줘 갈채를 받았다.
「뜬쇠」 전수덕씨는-『타악기의 리듬은 어머니 태 속에서부터 들어온 심장의 고동소리에 가까운, 가장 원초적인 소리라고 한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고 약한 것 같으면서도 강하고 순한 것 같으면서도 사나운 게 타악의 특징이다. 일견 단조로워 보이는 속에서도 거의 무한에 가까운 가락으로 놀 수 있다. 거기 가락마다에 신명이 실린다.』
사물놀이는 앉아서 노는 「앉은 반」과 서서 노는「선반」으로 나뉜다. 「뜬쇠」들은, 이번에 호남 우도농악 중 오채굿과 판굿, 영남농악, 충청·경기농악의 삼쇠합주를 보여줬다. 특히 삼쇠합주는 지금까지의 짝쇠(두 꽹과리의 연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3개의 꽹과리가 주고받는 새로운 연주기법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뜬쇠」 강대승씨-『한판 어울려 절정에 이르면 정말 온몸에 소름이 싹 끼치며 온 정신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들은 전국팔도 방방곡곡논두렁에 한을 묻고 거리죽음을 한 뜬쇠들의 넋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다시 「뜬쇠」 전수덕씨-『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조상들이 놀았던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하고 싶다. 맨 밑바닥을 시골 마음으로부터 다져나가고 싶다.』
잊혀진 풍물소리, 퇴락한 우리가락, 깊은 잠에 빠져드는 우리의 신명을 이 시대에 되살리기 위해 고을고을을 누비고 싶은 「뜬쇠」들. 『모든 고을에 사물을 보내자. 그리고 치게 하자.』
그들은 우리를 세계에 날리기에 앞서 우리 속을 채우고 싶다고 했다. <이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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