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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지나고 보면 아주 작은 점이더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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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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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제 기자  ‘보이스 택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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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데뷔한 가수 이승철(51)씨는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신곡 발표가 기대되는 현역 가수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상당수 가수가 과거의 ‘영광’을 밑천 삼아 ‘추억팔이’에 나서고 있지만 그의 경우는 다르다. 매년 신곡을 발표할 뿐만 아니라 1년에 30차례 이상 여는 콘서트에 수만 명을 모으는 ‘빅스타’다. 이쯤 되면 안주할 법도 한데 그는 “나의 라이벌은 빅뱅의 태양”이라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청춘리포트 - 데뷔 30년 이승철에게 ‘서른’을 묻다

기자가 직접 택시를 몰며 민심을 듣는 중앙일보 ‘보이스택싱(voice taxing)’이 지난 8일 이씨를 특별 손님으로 모셨다. 가수 나이 서른. 온갖 굴곡을 겪었지만 여전히 ‘청춘’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 인생 나이 서른을 살고 있는 한국의 청춘들이 새길 만한 조언을 듣기 위해서다. 이씨가 데뷔하던 해에 태어나 서른 살이 된 ‘젊은 팬’ 2명도 일부 구간 동승해 그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2시간30분 동안 택시를 타고 서울 삼성동·미근동·서초동 등 시내 곳곳을 다니며 진행한 인터뷰를 그의 노래 가사와 함께 재구성했다.


#‘시간 참 빠르다’


시간 참 빠른 것 같아/마치 어제 일인 것만 같아서 난/좋았던 그때가/아팠던 그때가/또 그리워서 울고 있는 나/시간 참 빠르다.’(‘시간 참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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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가수 이승철씨가 지난 8일 중앙일보 보이스택싱을 통해 자신의 데뷔 연도에 태어난 서른 살 청춘들을 만났다. [사진 최정동 기자]

오후 2시 서울 삼성동에 있는 이씨의 녹음실로 향하는 길에 지난해 발표된 그의 노래가 떠올랐다. 노랫말처럼 좋았던 그때도 아팠던 그때도 지나고 나면 그리워지는 법. 첫 행선지인 서대문역으로 향하면서 그에게 과거 30년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다.

30년간 굴곡이 많았습니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튀는 면이 있어요. 독선적인 것도 있고 고집도 있고 그래야 음악도 잘할 수 있기는 한데 겉멋이 들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90년부터 5년간 불미스러운 일로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하기도 했고 어려웠던 일들을 성공적으로 잘 극복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참 빨리 갔네요. 둘째 딸 원이가 내년이면 어느덧 열 살이니까요.”
방송 정지는 가수로선 치명적이었을 텐데요.
“그때 저는 음악적 오기란 게 있었어요. 방송엔 못 나가지만 그만큼 공연을 많이 해 팬들을 만나자는 거였죠.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했습니다. 일주일에 4일씩 공연해 성대 결절이 올 정도였죠. 그때 힘들었던 일들이 지금의 절 만들었어요. 당시 열 살이었던 팬들이 이젠 마흔이 돼서 아들딸과 함께 콘서트장에 오니까요.”
30년 전 데뷔한 가수가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눈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어요. 저는 후배들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폼 잡다가 잊혀진다고요. 제가 ‘슈퍼스타K’에서 심사위원을 할 때 만났던 친구들에게 항상 잔소리하는 게 그 얘기예요. 자신들이 정말 수퍼스타가 돼 데뷔하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일개 신인 가수인데. 그러니 폼 같은 거 잡지 말고 대중 곁에 항상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스타는 대중의 생각을 읽어서 그들과 정말 가까운 사람이 돼야 하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잖아요. 잘나갈 때 관리한다고 폼 잡는데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30년간 제가 꾸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든 대중의 시야 안에 머무르려 한 노력 덕분이죠. 대중 스타는 대중의 껌이 돼야 해요.”
올해도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죠.
“지난 4월에 신곡 ‘일기장’을 발표했고요.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아 ‘무궁화 삼천리 모두 모여랏!’이라는 전국 투어 콘서트를 진행 중입니다. 대도시뿐만 아니라 을릉도에서 마라도까지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다닐 계획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무궁화 삼천리라는 이름이 붙었죠. 다음달 1~2일엔 서울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합니다.”


#‘아마추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모두가 처음 서 보기 때문에/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선/모두 다 같은 아마추어야.’(‘아마추어’)

오후 3시쯤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남산 1호 터널 인근의 정체는 극심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거북운행’으로 수십m를 느릿느릿 전진하는 가운데 그에게 요즘 청춘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힘들다는 청춘이 많습니다.
“산다는 건 항상 힘든 거예요. 안 어려웠던 세대가 언제 있었겠어요. 아버지 세대도 힘들었죠. 지금 세대도 힘들고. 중요한 건 이 시기가 오히려 창조적인 발상을 만들 기회가 있는 사회적 시기라는 거예요. 학벌의 중요성도 많이 줄었잖아요. 사회가 발달할수록 직종은 늘어나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기회도 많아졌고요. 본인 스스로 시장을 만들고 개척하고 희망의 길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저도 어렸을 적 방송 정지를 당했을 때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겨 냈어요.”
가수 데뷔하실 때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서른 살 성인입니다. 그들에게 조언을 해 주시다면요.
“낭만적인 희망과 긍정적인 오기를 동시에 갖춰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길을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갖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많은 준비를 해야 하고 일을 사랑하는 열정이 중요합니다. 열정을 갖고 ‘이거 하면 어떨까’ ‘저거 하면 좋겠다’ 부딪혀 나가다 보면 결국 길이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인생을 살다 보면 죽을 만큼 힘든 일, 하기 싫은 일도 해야 될 때가 있어요. 그런 일들도 지나고 보면 인생에서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해요. 가수 생활만 30년 하다 보니 그런 지혜를 얻게 되더라고요.”


#‘인연’



첫 번째 목적지인 서대문에 당도한 건 오후 3시30분쯤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씨의 팬이었던 임은아씨가 커피를 건네며 보이스택싱에 승차했다. 올해 나이 서른. 임씨는 이씨가 가수로 데뷔하던 해에 태어나 현재 정부기관 행정관으로 일하고 있다. 서초동 주변 사무실에 업무 협의차 이동하는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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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아=“안녕하세요. 어머! 영광이에요. 제가 어제 오전 4시에 잠을 잤어요. 원래 소개팅 할 때도 안 떠는데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되네요. 이승철 오빠를 제가 직접 보게 되다니요.”

▶이승철=“반갑습니다, 하하하. 소개팅 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물어보시면 돼요.”

▶임은아=“먼저 고백부터 하자면… 오빠 노래에는 옛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매력이 있어요. 특히 헤어진 옛사랑이요. ‘네버엔딩 스토리’ 같은 노래의 가사를 들어 보면 상대방을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잖아요. 오빠 노래를 들으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요. 특히 ‘인연’이란 노래를 좋아해요.”

임씨의 얘기를 들은 이씨는 즉석에서 ‘인연’의 한 구절을 불러 줬다.

‘너무 사랑했었나 봐요 그댈/보고 싶은 만큼 후회되겠죠/같은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면/차마 볼 수 없음에 힘겨운 눈물을 흘리죠/나는 정말 그댈 사랑해요~.’

반포대교를 넘어 서초동으로 향하는 길에 임씨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쉴 틈 없이 바쁘게 활동하실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해요.”

“공연을 안 하면 감각이 사라져요.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하는데 2주만 쉬어도 감이 떨어지거든요. 목소리도 악기랑 같아 자꾸 써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고 노래의 느낌도 살릴 수 있는 거죠. 꾸준한 게 중요합니다.”


#‘MY LOVE’


힘껏 안아줄게 널 그리고 말할게/나 이렇게 너를 외치면서 My Love.’(‘M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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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역에서 임씨가 내린 뒤 서울교대 인근에서 두 번째 팬 정희범씨가 보이스택싱에 승차했다. 정씨 역시 올해 서른이 됐다. 한의사인 정씨는 대학생 때부터 이씨의 팬이었다. 정씨는 주섬주섬 선물 꾸러미를 꺼냈다.

▶정희범=“와인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제가 목공예를 하는데 치즈도마입니다.”

▶이승철=“아이고, 감사합니다.”

▶정희범=“대학 다닐 때 아는 형이 엄청난 팬이어서 그때부터 저도 좋아했어요. 노래 부르고 싶어서 한 곡당 500원인 ‘코인노래방’에 가서 ‘말리꽃’을 부르고 그랬어요.”

올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어 프러포즈 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이씨의 노래 ‘MY LOVE’를 즐겨 듣는다는 정씨가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배우자 되실 분이 꼭 직장에 다니도록 해요. 일과 사랑의 균형이 중요하니까. 잘난 척하면서 그만둬 이런 거 하지 말고요. 그리고 절대 바람피우지 마세요. 그 2개만 지키면 됩니다.” 

글=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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