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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광화문에 이런 문화 공간이? 영화, 미술, 공연, 레스토랑까지 갖춘 '에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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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광화문 인근 서울역사박물관 뒤 골목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경희궁 숲의 담 옆에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보인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조금은 외진, 그래서 숲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이다. 한 건물 안에 극장, 레스토랑, 공연장, 갤러리를 품고 있는 이곳. ‘에무’라는 이름은 바보 신을 예찬한 중세 철학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무스에서 따왔다. “바보처럼 놀며 예술을 피부로 느끼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김영종(60) 관장의 뜻이 담겼다. 에무가 펼치려는 꿈은 무엇일까. 볕 좋은 초여름날, 이곳을 찾아 김 관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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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라희찬(STUDIO 706]

지난 5월 5일, 에무 2층에 영화관 에무 시네마가 개관했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다양성 영화관 정식 승인을 받고 오픈한 것. 개관작은 리마스터링 개봉한 ‘비틀즈:하드 데이즈 나이트’(5월 5일 개봉, 리처드 레스터 감독)다. 상영 후 지하 공연장 팡타 개러지(Panta Garage)에서 인디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비틀즈의 곡을 연주하는 특별 공연이 열렸다. 이날 극장과 공연장 티켓은 매진을 기록했다. 영화와 공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에무가 오랜 시간 그려 온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찾고, 인디 밴드 공연을 보기 위해 홍대 인근 공연장을 찾는 지금, 에무는 어디로 가려는 걸까.

예술로 그대를 놀게 하리라, 복합문화공간 '에무' 김영종 관장

“현대 자본주의는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분업과 전문화에 주력해 왔어요. 그런데 한 가지만 아는 인생은 감옥에 갇힌 삶이나 같죠. 이런 흐름이 문제라고 늘 생각해 왔어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아티스트이며 과학자였고, 기술자이며 철학자였잖아요. 다양한 문화가 서로 만날 때, 더 많은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죠.” 김 관장의 말이다.

김 관장은 출판사 사계절의 창립자다. 20~30대에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다 1982년에 출판사를 열었다. 1995년에 아내 강맑실 대표에게 출판사를 맡긴 후 ‘자유인’이 된 그는 실크로드 연구와 거문고, 중의학에 매진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더욱 절실하게 깨달은 건 ‘놀이’의 중요성이었다. “머리로 계획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피부로 느끼며 노는 게 진정한 놀이”라는 것이다. “비를 맞으며 웅덩이를 밟고 노는 아이들처럼, 큰 당산나무 아래서 춤추며 마을 축제를 즐기던 옛사람들처럼 놀 줄 알아야죠. 그래야 합리성에 옥죄인 머리를 풀어 놓을 수 있고, 내일을 새롭게 살 수 있는 생명력과 해방감도 얻을 수 있어요.” 공간 이름에 바보 신을 예찬한 에라스무스를 끌어들인 이유다. 김 관장은 “바보 신을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광대, 즉 지식과 이성에 대항하는 예술가”라고 덧붙였다.

에무에 자유로움을 불어넣는 건 경희궁 숲. 1층 에무 또뚜가 레스토랑의 테라스에 앉으면 숲속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고, 2층 극장 뒤편에는 숲을 보며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 공연하러 온 뮤지션들이 종종 ‘힐링 하고 간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 자리엔 원래 출판사가 있었다. 2003년 출판사가 파주로 이사한 후 오랫동안 지하 1층 공간만 활용하다가, 2014년 개조해 지금의 문화 공간으로 조성했다.

[사진 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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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에무는 김 관장의 철학대로 예술가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행사를 열었다. 2011년엔 자기 안에 있는 바보를 깨우자는 연극 ‘바보제’를 열었고, 2015년 인디레이블 러브락컴퍼니가 주최해 음악 관련 물품을 사고파는 ‘탕진 시장’을 열었다. 현재는 공연과 영화, 전시를 하나로 잇는 행사를 계획 중이다. 6월 3일부터 석 달간 매달 첫 번째 금요일엔 인디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 등이 참여하는 ‘신광화문시대’가 열릴 예정이다. 7월 1일엔 밴드 멤버 회기동 단편선이 출연한 영화 ‘파티51’(2014, 정용택 감독) 상영 후, 단편선과 선원들의 공연이 이어진다.

현재 에무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접점을 찾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영화·공연·전시의 결이 각기 달랐어요. 영화와 공연이 인디 경향이 두드러졌다면, 전시는 유명 기성 작가 작품이 주를 이뤘죠. 올해는 경계를 넘어 젊은 아티스트들의 도전과 실험을 지원하는 쪽으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실무를 담당하는 김상민 운영팀장의 말이다. 에무 시네마를 개관하며 시혜지 프로그래머와 김수련 큐레이터를 영입한 에무는 각 부문을 연계할 수 있는 문화 콘텐트를 기획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갈망하는 20~30대 여성 관객을 주 타깃으로 하되, 관객층을 점차 넓힌다는 계획이다.

현재 에무 시네마에서 상영 중인 영화는 ‘아가씨’(6월 1일 개봉, 박찬욱 감독) ‘철원기행’(4월 21일 개봉, 김대환 감독) 등이다. 시 프로그래머는 “에무 시네마는 멀티플렉스보다 더 자유롭게 상영 프로그램을 짤 수 있다”며 “‘아가씨’ 같은 대중영화부터 예술·독립영화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영화를 상영할 것”이라 밝혔다. 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연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은 고전영화도 꾸준히 상영할 것”이라 덧붙였다. 특히 올해 10월경부터는 프랑스 대사관의 지원을 받아 고전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누벨바그 이전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인생유전’(1945, 마르셀 카르네 감독)을 시작으로, 매달 다른 프랑스 고전영화를 만나 볼 수 있다. 상영 후엔 그 영화의 문화적 가치를 짚어 보는 강연도 열 예정이다.

김 관장은 에무 시네마와 더불어 광화문 인근에서 누리는 ‘놀이’를 확장하겠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바로 ‘경희궁 영화길’(가제)이라는 이름으로, 종로문화재단과 함께 시네큐브 등 경희궁 주변 다른 극장과 연계해 영화 강좌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공감과 연대는 에무가 나아가려는 중요한 방향입니다. 치열한 경쟁 때문에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예술만한 특효약이 없기 때문이죠.” 김 관장의 말이다. 그는 에무를 베이스캠프로 예술 관련 커뮤니티를 만들 계획이다. 영화감독과 뮤지션, 화가 등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두고 재미있게 놀며 대화하는 자리다. “관계는 놀면서 만들어지고, 예술은 광대의 소리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믿는 그의 놀이터 에무는 ‘행복한 예술’을 피워 낼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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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 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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