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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과 민권 조화이뤄야 나라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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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독일은 「국가로 망한 국가」라고 한다. 「카이제르」의 제2제국이나「히틀러」의 제3제국이 모두 지나친 국가주의, 광적인 애국주의때문에 멸망한데서 나온 말이다.
확실히 2차대전 이전의 독일은 대표적인 국권우위 국가였다. 당시의 일본이나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국권은 민권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국권이 지배자의 권리라면 민권은 피지배자의 권리다.
국권이라는 말을 국가 또는 정부로 바꾸고 민권을 사회 또는 국민이라는 말로 바꿔도 논리는 같다.
영국과 미국은 민권우위의 나라다. 국가보다는 사회, 정부보다는 국민이 위에 있다. 국권은 항상 민권에 종속된다. 이 체제는 역사상가장 안정되고 진보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룩해 왔다.
반대로 국권우위체제에서는 모든 결정이 국가의 이름아래 지배자에 의해 이뤄진다. 국민은 정부에 예속되어 피동할뿐이다. 이런 체제는 가혹한 전제정치하에서 국가주의로 발전해 나갔다. 민주주의는 싹틀수 없었고 사회발전도 늦었다.
지리적으로 영·미와 독·노 사이에 위치한 프랑스는 사회성격도그 중간쯤 된다. 거기서는 국권과 민권이 번갈아 우위를 누리면서 부단히 균형을 추구해 왔다.
국가주의가 등장하여 정부권력이 비대해지면 국민이 들고 일어났다. 반대로 민중주의(populism)가 우세하여 정치가 불안해지면 「나폴레옹」 「드골」 같은 국가주의 영웅이 등장하여 민권을 억눌렀다. 프랑스에 정변과 혁명이 잦은것은 그때문이다.
국권우위가 농업사회에 걸맞는 체제라면 민권우위는 산업사회에 걸맞는 체제다.
전후 일본과 서독은 전통적인 국권우위에서 벗어나 민권우위로 변신했다. 이것은 양국이 농업형자본주의에서 공업형자본주의로 전환한것과 때를 같이한다.
지금 일본과 서독 국민들은 그들의 뜻에 따라 정부를 바꾸고 지도자를 선택할수 있다. 완전한 민주주의, 철저한 민권우위가 확립돼 가고있다.
양국은 몇가지 중요한 역사적 경험을 함께하고 있다. 그 하나가 민주주의실험이다. 1차대전후 독일 바이마르공화정과 일본의 대정디모크러시다. 모두 단기적이고 실패로 끝났지만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경험이었다.
다음은 고도의 경제성장과 자본주의의 발전이다. 19세기의 70년대이후 양국경제는 비약을 거듭하여 선발산업국가인 영국과 미국을 위협할 정도였다. 그 성과는 대전으로 와해됐지만 민권우위확립후 다시 세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그들과 비슷한 민주공화정과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일본과 서독의 민주화성공은 곧 우리의 민주발전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들이 기울인만큼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들도 민주화를 못이룰 이유는 없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서방선진국들은 50년대의 호황끝에 60년대 들어 시련에 직면했다. 신좌익과 스튜던트파워의 도전이었다. 여기에 노동세력이 가세했다.
미국은 월남전반대운동과 흑인들의 민권운동으로, 서구는 테러리즘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일본은 학생데모와 적군파의 폭력을 겪었다.
이런 도전은 70년대의 이르러 모두 극복했다. 민주체제의 탄력성 있는 대응과 경제의 지속적 성장의 결과였다.
그중 어느나라도 그같은 시련에 직면하여 민주주의를 후퇴시키진 않았다. 민권이 위축하거나 국권이 강화된 나라도 없다.
오히려 「드골」 같은 국가주의자가 물러섬으로써 프랑스의 국권은 위축되어 민권과의 균형을 회복했다. 그 결과 정치는 더욱 안정되고 경제는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그들이 겪은 도전을 우리는 70년대의 고도성장을 거쳐 80년대에 들어 겪고 있다. 선진국의 경험, 즉 탄력성 있는 민주적 대응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좋은 처방이다.
전통적으로 농업사회였던 우리는 또한 전통적으로 국권우위를 유지해왔다. 이런점에서 대다수 제3세계국가와 같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공업사회로 전환돼 있다. 농업인구는 전체의 24%, 농업소득은 전체GNP의 14%에 불과하다. 그나마 하향추세에 있다. 그러나 민권우위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국권우위로는 경제·교육·종교의 발전과 도시화로 의식이 향상된 산업사회의 시민을 자의로 통제할수는 없다. 독일과 일본의 패전은 이것을 입증한 역사의 증언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상 민권우위는 우리사회의 당연한 목표다. 과대한 국권의 분양을 통해 민권과 국권, 국민과 정부의 권력균형·이익조화가 이뤄져야한다. 그것이 곧 국가부강의 길이다. 오늘의 우리의 시련도 그속에서 해결되고 극복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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