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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가시연꽃·팔색조·따오기…희귀 동식물 많은 ‘원시 생태의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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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우포늪생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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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생태길의 백미 사촌군락에 있는 늪지대.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늪을 버드나무와 사초가 둘러싸고 있다.

6월의 추천길 테마는 ‘교과서에서 만나는 걷기여행길’이다. week&은 6월의 추천길로 선정된 10개 트레일 중 경남 창녕의 우포늪생명길(8.4㎞)을 골랐다. 현재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비상교육)에 우포늪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한국습지학회 안경수 전 회장이 쓴 ‘우포늪-거기엔, 헤어날 수 없는 매력’이라는 수필이다. 안 전 회장은 수필에서 “인간에게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곳”이라고 우포늪을 소개했다. 지난달 25일 우포늪 둘레를 따라 조성된 우포늪생명길을 걸었다.

국내 최대의 내륙 습지

우포늪은 우포(1.3㎢), 목포(0.53㎢), 사지포(0.36㎢), 쪽지벌(0.14㎢) 등 네 개의 늪으로 이루어진 천연 습지다. 우포늪은 약 8000만년 전 낙동강과 낙동강의 지류 토평천이 범람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와 세진리, 이방면 안리와 옥천리, 대합면 주매리에 걸쳐 있는 우포늪은 2.313㎢ 면적으로 국내 내륙 습지 가운데 가장 크다. 우포늪은 자체로 천연기념물 524호이자, 환경부가 지정한 습지보호지역이다.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우포늪 일대 8.547㎢의 땅에는 습지 보호시설이나 연구시설 외에 어떤 인공물도 들어설 수 없다. 우포늪에 동식물 1500여 종이 살고 있는데, 이 중에서 수리부엉이·따오기 등 천연기념물이나 가시연꽃·팔색조 등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된 것만 21종에 달한다.

우포늪생명길이 조성된 것은 2010년이다. 우포늪 주변 마을의 주민이 이용하던 임도를 정비해 탐방로로 바꿨다. 우포늪생명길은 우포늪 생태관에서 시작해 우포를 한바퀴 돌고 생태관으로 돌아온다. 탐방로 주변으로 버드나무·뽕나무·느릅나무가 빽빽하다. 뽕나무에서 떨어진 오디가 짓이겨져 길바닥 곳곳에 거무튀튀한 멍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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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제방에서 바라본 우포늪의 일몰.

출발지점에서 약 1㎞ 떨어진 대대제방에 다다르자 시야가 트이면서 우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우포는 잔물결 없이 고요했다. 가끔 붕어나 잉어가 수면 위로 튀어 올라 한바탕 물결을 일으켰다. 그러나 우포는 금방 또 잔잔해졌다. 백로와 왜가리도 흔히 보였다. 눈으로 우포 둘레를 따라가 봤다. 늪이 너무 넓어 고개를 최대한 길게 빼고 돌아봐야 했다. 늪을 둘러싼 숲은 녹음이 짙다 못해 검푸른 색을 띠었다.

벌사상자 꽃에 붙어있는 홍줄노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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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을 구성하는 우포·사지포·목포·쪽지벌은 원래 한 몸이었다. 농경지로 개발하기 위해 늪을 메우고 제방을 쌓으면서 네 개로 찢어졌다. 우포늪에는 현재 제방이 5개 있다. 대대제방은 1930년대에, 사지포·목포·주매·우만제방은 70년대에 만들어졌다. 김경(51) 우포늪 생태해설사가 “제방을 쌓기 전의 우포늪은 지금보다 세 배 정도 컸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대대제방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대대마을은 원래 우포의 일부로 늪지대였다. 어린 시절 대대마을에서 살았다는 주영학(68) 우포늪 환경감시원은 “아버지에게 듣기로 35년 제방을 쌓을 때 마을 사람들이 동원됐다. 돈 대신에 확인증을 줬는데, 확인증을 가지고 면사무소 배급소에 가면 밀가루나 쌀로 바꿔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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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에 떠있는 마름의 잎.

제방이 만들어지기 전 대대리는 궁핍한 마을이었다. 배고팠던 시절 우포늪 주변 마을에서는 늪에서 먹을 것을 구했다. 남자가 나룻배를 타고 붕어나 잉어를 낚는 동안 여자는 물에 사는 식물의 열매를 채취했다. 대표적인 것이 마름이었다. 마름은 연꽃처럼 늪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수면에 띄운 수생(水生)식물이다. 우포늪 사람들은 마름 열매를 쪄 먹었는데, 맛이 밤과 비슷해 ‘물밤’ 혹은 ‘말밤’이라고 불렀다. 현재 대대마을에는 50가구가 양파·마늘 따위를 키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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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을 덮고 있는 수생식물. 잎이 넓은 것이 자라풀, 작은 것이 개구리밥이다.

대대제방을 통과하자 잠수교에 닿았다. 수시로 물에 잠긴다는 잠수교는 수생식물을 관찰하기에 좋았다. 대가래·검정말 등 몸 전체를 물에 담근 채 살아가는 수초가 물살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바람에 부딪혀 흔들리는 들풀의 움직임과는 또 달랐다.

원시 자연을 누비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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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아카시나무가 늘어선 주매제방.

잠수교를 건너 싱그러운 아카시나무가 양 옆으로 늘어선 주매제방을 통과해 안리의 장재·소목마을에 들자 ‘붕어즙 판매’라고 적힌 간판이 집마다 보였다.

장재·소목마을에는 현재 70여 명이 사는데 이 중 11명이 우포늪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간다. 보호습지구역으로 지정된 우포늪에서는 환경부가 허가한 주민만 낚시를 할 수 있다. 현재 낚시 허가를 받은 사람은 모두 12명으로 이방면 안리에 11명, 대합면 소야리에 1명이 있다. 성영길(59) 소목마을 이장이 붕어 자랑을 늘어놨다.

“붕어를 잡아 즙을 내 팔기 시작한 것이 15년 전부터제. 물꼬기를 장에 내다 팔 때보다 수입이 10배 정도 늘었데이. 청정지역 우포늪에서 잡은 100% 자연산 붕어로 만든 붕어즙인디 몸에 우째 안 좋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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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어리연꽃.

우포의 수심은 평균 2m로 그리 깊지 않다. 그러나 늪 바닥에 깔린 펄이 어마어마하다. 펄 깊이가 5m가 넘는다고 한다. 우포에서 여름은 낚시를 하기에 좋지 않은 계절이다. 장대로 늪 바닥을 밀어서 전진하는 나룻배를 타고 낚시를 하는데, 여름에는 수초가 가득해 배를 미는 데 힘이 두 배로 든단다. 해서 여름에는 1주일에 한두 번밖에 배를 띄우지 않는단다. 늪에서는 동력선을 띄울 수 없다.

소목마을을 빠져나온 길은 마을 뒤편의 우항산(해발 64m)으로 이어졌다. 산 들머리에서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니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길에는 사람 발자국보다 멧돼지 발자국이 더 많았다. 나지막한 우항산을 넘어 다시 물가로 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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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초군락으로 가는 징검다리.

쪽지벌과 우포 사이에 있는 사초군락은 우포늪생명길의 백미였다. 벼와 비슷하게 생긴 사초, 갈대와 억새 사이로 어른 한 명이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나있었다. 갈대와 억새 잎에 바람 부딪히는 소리, 풍뎅이 날갯짓 소리, 꾀꼬리 울음소리에 취해 길을 걷고 있는데 앞서 가던 김군자(56) 해설사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이제 비밀의 정원으로 갑니다.”

사초와 갈대, 억새 사이로 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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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해설사를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둘레가 50m 정도 되는 늪이 보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물웅덩이 주변으로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자라나 있었고 늪으로 가는 길바닥에는 이름 모를 초록 식물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주변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늪은 마치 커다란 거울 같았다. 햇빛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비집고 비스듬히 늪을 비췄다. 흙과 늪, 버드나무와 사초, 홍줄노린재와 무당개구리 등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진귀한 순간이었다.

수리부엉이 번식지 부엉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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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초군락을 빠져나오니 10m 높이의 절벽이 길 옆에 서 있었다. ‘부엉덤’이라는 절벽으로 수리부엉이(멸종위기등급 2급)의 번식지였다. 수리부엉이는 깊은 산중이 아니라 물가와 가까운 절벽에서 알을 낳는다. 늪에서 먹이를 구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랬다.

절벽을 지나 15분쯤 더 걸었더니 우포따오기복원센터가 나왔다. 여기에 천연기념물 198호 따오기가 살고 있다. 현재는 관람객 출입을 막고 있다. 지난해 2월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한 이후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우포늪과 주남저수지는 불과 50㎞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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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내려앉은 우포늪의 새벽. 우포늪 환경감시원 주영학씨가 나룻배를 타고 있다.

토종 따오기는 70년대 후반 절종됐다. 2008년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방한하면서 따오기 한 쌍을 선물했고, 우리 정부는 우포늪에 복원센터를 지어 따오기를 키웠다. 이후 따오기는 번식에 성공해 94마리까지 늘어났다. 김군자 해설사가 “내년쯤 우포늪에 따오기를 방사를 할 계획”이라며 “우포늪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따오기를 볼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포따오기복원센터는 다음달 따오기 우리를 개방할 예정이다.

▶ 우포늪 생태관 명물, 노용호 연구관의 생태춤 (영상)


길 정보=우포늪생명길(upo.or.kr)은 8.4㎞ 길이다. 우포늪 생태관에서 출발해 대대제방~소목마을~사초군락을 지나 우포늪 생태관으로 돌아오는 순환길이다. 길이 평탄해 누구나 걷기 쉽다. 거리는 짧지만 볼 거리 많아 완보하는데 4시간 넘게 걸린다. 탐방에 앞서 우포늪 생태관(입장료 2000원)에 들르는 것이 좋다. 우포늪의 식생에 대한 전시를 보고 길을 걸으면 여행이 더 풍성해진다. 생태춤도 배울 수 있다. 노용호(53) 우포늪 생태관 연구관이 우포늪에 사는 동·식물의 특징을 포착해 춤으로 재현했다. 창녕군이 우포늪 해설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한다. 창녕군 홈페이지(cng.go.kr)에서 예약할 수 있다. 055-530-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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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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