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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은돈이 100달러 짜리 지폐로 바뀌는 겁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중순 서울 이태원의 한 도로가에 주차된 차량안. 사업가 A씨(45)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라이베리아인 B(42)가 서류가방 크기의 검은색 기계의 스위치를 켠 후 한쪽에 검은색 종이를 밀어 넣자 30초도 되지 않아 기계 반대편에서 100달러짜리 지폐가 나온 것이다.

B는 비교적 능숙한 영어로 작동원리를 설명했다. 이 100달러 지폐의 위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인근 은행에 가니 우리 돈으로 실제 ‘환전’이 됐다. A씨는 화폐 변화기와 검은색 종이 대금 등으로 5억4000만원을 지급했다. 지인들에게 빌린 돈이다. B는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얼마 후 서울 한남동 주택가에 주차한 차량 안에서도 검은색 종이가 100달러짜리 지폐로 변하는 마술이 일어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긴 컵 안에 검은 종이를 넣고 손가락으로 겉면을 문지르니 서서히 100달러 지폐로 변하는 것이다.

C씨(32)는 혹시 몰라 이 과정을 자신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인근의 은행에 갔더니 역시 환전이 됐다. C씨는 특수액체와 검은 종이 등 구입대금으로 4000만원을 건넸다. B는 “미국이 아프리카 분쟁지역에 구호자금으로 보내는 블랙머니를 한국으로 밀반입한 것”이라며 A씨, C씨 등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A씨 등은 곧 자신이 일명 ‘블랙머니’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화폐 변환기와 특수 약품은 모두 가짜다. 기계에 미리 넣어둔 100달러 지폐가 기계 속의 모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뿐이고, 겉면을 검게 칠한 100달러 지폐를 세탁 세제로 추정되는 가루를 섞은 물에 씻어낸 것에 불과했다.

3개월 단기 관광비자(B1)로 지난달 입국한 B에게 속은 피해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모두 4명. 피해금액은 12억원에 달한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9일 사기 혐의로 B를 구속하고 공범 7명의 뒤를 쫓고 있다. 공범은 모두 아프리카인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B씨에게 검은종이 10만여장·미화 1만5000달러·화폐변환기·세제추정 가루 14㎏ 등을 압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출처불명의 미화를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 심리에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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