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사먹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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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얼마 전까지 만해도 우리 식탁의 가장 기본 반찬인 김치를 사서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시장에서는 물론 시내 슈퍼마킷, 심지어 깊은 산속 등산로에서까지도 김치를 사먹을 수 있다. 김장철에는 저장용 김치도 주문하면 배달해주게 되였다.
슈퍼마킷에서는 김치뿐만 아니라 온갖 반찬들이 정갈스럽게 만들어져 진열되어있다. 밑반찬은 물론 각종 전·해삼탕·샐러드까지 사먹을 수 있다. 이러한 기성식품은 아직 너무 비싸고 메뉴가 다양하지 못하고 화학조미료를 많이 사용하는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다.
김치의 경우 집에서 담가 먹는다면 일단 만들어 놓은 것이 없어 질때 까지 한가지만 열흘이고 보름이고 생김치일 때부터 시어버릴 때까지 맛이 있든 없든 먹어야 한다. 그러나 사먹을 경우 오늘은 배추김치, 내일은 나박김치, 모레는 오이김치 등 얼마든지 바꿔가면서 먹을 수 있다.
생김치를 좋아하면 그날 담가서 파는것만 조금씩 사먹으면 된다. 다른 집에서 식사할때 느끼는 신선한 김치맛을 언제나 맛 볼수 있게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요리가 취미가 될수 있고 주부들은 늘상 반복하는 일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다는데 있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까닭에 가사에 충분한 시간을 할당 할 수 없는 주부의 경우에는 담가 파는 김치가 얼마나 편리한가.
공장에서의 노동은 기계화로 치닫고 있으며 대량생산은 현대의 특징적인 모습중의 하나다. 일상 생활용품생산이 왜 기계화되고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었나를 생각해 볼때 음식 만들기, 특히 김치 담그기는 왜 꼭 주부들이 해야할 것을 고집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에는 김치를 사먹는 주부라면 낙제주부라는 의식이 많은 것 같다. 여자들 스스로도 『김치를 사먹어!』하고 놀라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그러나 멀지 않아 기성식품을 사먹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기성복을 사입는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가 올 것이다. 왜 김치는 사먹으면 안되는가. 바쁜 주부는 사 먹을 수도 있다. 요리가 취미이고 살림살이에만 전념하는 주부가 늘상 김치를 집에서 담그는 것도, 김치를 사먹는 것도 다 형편과 취미에 따른 각자의 선택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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