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문 한 규<부산대 의대학장·내과>|간치료제 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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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70년초 국제간학회에서 「간과 약물치료」에 관한 심포지엄이 있었다. 이자리에서 『여기 모인 1백명의 간전문가에게 간치료제 한가지씩을 지적하라면 아마 1백1종류의 약물이 나을 것이다』 라는 우스갯 얘기가 나왔다. 그만큼 간에는 특효약이 없다는 얘기다.
간치료에 특효약이 없다는것이 바로 간질환의 특징중 하나다.
『좋은 약이 없읍니까?』『외제중에서…』『값은 얼마라도 좋으니』등 환자나 환자가족의 안타까운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간질환이라고 하지만 종류가 많다. 이 모두에 특효약이 거의없는 상태인것이다.
급성 바이러스간염은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므로 바이러스를 죽이는 특효약은 아직은 완벽한 것이 없다. 따라서 치료의 초점은 대중요법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다행히도 인체는 질병에 저항하는 자연치유력이 있으므로 대부분의 간질환은 안정·식이요법만으로도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급성간염의 80%정도는 합병증이 없는한 2∼3개월간의 규칙적 요양생활만으로 좋아지는 수가 많다.
간질환에서 특효약이 없다고 안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의사가 행하는 각종 치료나 처치는 환자자신이 갖고있는 치유능력을 향상시켜 하루빨리 원상으로 회복시키고 만성화를 저지하는데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같은 의사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빨리 치료한다고 좋다는 약을 이 약, 저 약 몰래 사서 복용하는 것을 볼수 있다.
간치료제라고 파는 약은 간의 여러가지 신진대사·물질대사작용을 좋게 한다는 의미에서 도움이 될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또 약이기 때문에 부작용도 생각해야한다.
실제로 간염의 급성기, 또는 만성간염이 급히 악화되었을 때 행하는 치료법은 안정과 식이요법이지 약이 아니다. 약은 식욕·소화를 도와 변통을 좋게 하는 정도로 쓰인다. 불행히 만성화된 경우라도 감염이 되므로 단념할 것이 아니라 간기능검사를 중심으로 한 과학적 데이터에 따라 전문가로부터 생활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서로 협력해 가면서 끈기있게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급성간염의 경우 조기치료에 의해 중증화를 막고 재발과 만성화를 방지해야 한다. 만성간염과 초기 경변증의 경우는 생활지도를 철저히 받는 한편 적절한 약제로 활동성을 억제해 악화를 막게 된다.
문제는 안정·식이요법이 간질환 치료에서 약물치료에 선행된다는 공식에 맞춰 규칙적이고 끈기있는 투병자세를 갖는것이 간질환 치료의 첩경이라는것을 환자자신이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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