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외화|경기지표는 고장났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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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년상반기 성장률이 3·2%밖에 안된다하여 크게 놀랄 필요는 없다.
온세계가 다 저성장의 곤욕을 치르고 있는 판에 우리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 독야청청 경제가 좋기를 바라겠는가.
그토록 튼튼하다던 싱가포르나 대만경제까지도 경보가 울려 비상대책을 서둘고 있다. 올것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저성장쇼크가 이토록 큰것은 그것이 갑자기 온것같은 착각때문이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과열이 우려된다는 걱정이 있었고, 그 동안 쭉 들어온게「안정적호황국면」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성장률이 2.7%로 급락했다고 발표되었으니 어찌 안 놀라겠는가.
마치 경보사이렌도 없이 비행기가 나타난 격이다.
경제의 경보시스템이 고장났거나 잘못 읽었거나 둘중의 하나다. 경제엔 으례 기복이 있게 마련이다.
좋고 나쁨이 순환되는데 그 진폭을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 경기지표 같은 경보장치가 있고 또 경제정책이 있다. 경제가 달아오른다 싶으면 얼른 진정책을 쓰고, 식는다 싶으면 부양책을 써서 상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타이밍」이 절묘해야 한다. 같은 바둑이라도 수순에 따라 죽고 살듯이 타이밍에 따라 정책이 묘약도 되고 독약도 된다.
절묘한 타이밍은 아무나 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경제정책을 전문직 지식과 경륜을 갖춘 경제팀이 맡아하는 것이다.
어진 백성들은 다소 이상한 바람이 와닿는 걸 느껴도 근엄한 경제팀이 권위있는 수자를 갖다대며 걱정없다고하면 걱정없는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
경제성적표라 할수있는 GNP통계를 받아쥐고보니 지난 1년동안 경기는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었음을 확연히 알수 있다.
작년1·4분기 성장률 12.7%에서 2·4분기 8.8%, 3·4분기 6.2%, 4·4분기 4.6%, 금년 1·4분기 3.9%, 2·4분기 2.7%로 곤두박질쳤던 것이다.
세계경기가 워낙 나쁘니 내림세는 어쩔수없다 하더라도 너무 굴러떨어진게 아니냐는 아쉬움이 많다.
일찍 증상을 알아 손을 썼더라면 이 지경까진 안갔을텐데 설마하다가 일을 크게 덧나게한 것이다.
경제진단에 관해선 경제기획원이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데 한달에 한번씩 경제상황을 종합체크하여 「월간경제동향」이란 이름으로 위에도 보고하고 발표도 한다.
그 진단표를 찾아 한번 되돌아보자. GNP통계로 볼때 작년1월께엔 이미 경기가 완연한 하강국면으로 들어갔을 때다.
그런데 이때 발표된 것은『경기는 선행지수가 0.7%, 동행지수도0.3%의 상승세를 보인 가운데 안정적인 호황권을 유지하고 있음』이었다.
2월엔『선행및 동행지수가 큰폭으로 증가하여 상승세가 지속되었음』
3월『선행및 동행지수가 작년말의 높은 상승에서 상대적인 감소를 보여 하락하였으나 경기국면은 안정적인 호황권을 유지하고있음』
4월『선행지수가 감소했으나 동행지수는 0.1% 증가했으며 경기국면은 계속 안정수준을 유지하고 있음』
5월『선행지수가 하락했으나 동행지수는 전월에 이어 회복세를 보였으며 경기국면은 계속 안정권을 유지하고 있음』
6월『동행지수의 증가폭이 커졌으며 선행지수도 연 3개월 감소에서l.5%의 증가로 반전하여 회복세를 보였음.』
7월『동행지수는 전월과 보합이나 선행지수는 1.1% 증가함으로써 전월에 이어 회복세를 보였음』
8월『동행지수는 전월에 비하여 감소하였으나 선행지수는 보합을 유지했음』
어느 한군데도 성장율이 2.7%로 급락할 정도로 경제가 내리막에 있다는 시그널이 없다.
지난 7월13일 기획원이 발표한 85년상반기 경제실적과 하반기전망에서는 『상반기 GNP성장은 4∼5%선으로 둔화될것으로 추정되나 이는 작년 상반기의 이례적 고성장 (10.6%) 에 대한 반사적 하락요인도 있고 하반기에 다시 회복될수도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경기가 이미 하강국면으로 돌입된 상태라고 속단할수는 없음』이라고 진단했다.
진단에 심각한 증상이 없으니 바른 처방이 나올리 없다.
경제상황에 대해 속단을 않는 신중한 태도는 높이 살만하나 경제가 이토록 내려가도록 경보를 안울린것도문제다.
사실 경제팀으로선 경보를 울리기가 무척 주저될 것이다.
경제의 심리적 효과도 감안해야하고 경보를 서둘러 울리면 이제까지 해온것이 미흡했다는 것을 자인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의 문제점보다 좋은 면을 크게 보려하고 또 아름답게 발표하려한다.
사실 경기에 대해선 위험신호가 오래전에 잡히긴 했다.
어느 은행조사부장이 그 신호를 잡아 보고를 했는데「안정적 호황국면」으로 양해된 태평무드를 깰뿐 아니라 잘못보았을지 모르니 해외에서 좀더 공부를 하라고 해외 근무로 발령이난 일이 있다.
그리고는 잘된다, 잘 된다하며 모두에게 자신을 주어 심리적요법으로 경제를 살려보려다가 실기를 하고만것이다.
외채문제나 요즘은 멀쩡한 물가문제에 대해서도 지금 실기를 하고있지 않는지 모르겠다 경보시스팀의 미작동이다. 경보시스팀의 고장이 어찌 경제뿐이겠는가.
사회 각분야에서 고장난데가 많다. 미리 경보가 울리고 안전밸브가 열리는게 아니라 문제가 쌓이고 쌓이다가 폭발하고 만다. 지난 총선때의 회오리같은 민의, 미문화원사건, 요즘의학원사태와 노사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사태가 파국으로 가는것을 막기 위해선 사회 각분야의 경보시스팀을 서둘러 고치고 안전밸브릍 열어놔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보사이렌을 누를 긴장된 태세와 용기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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