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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세먼지 주범? 고등어는 억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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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일 유명가수 A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하나인 인스타그램 에 “#고등어 #미세먼지 #혐의벗음 #무고 #축하해 고등어야♥”란 게시글과 고등어 사진을 올렸다. 팔로어만 38만 명이 넘는 그의 글에 ‘좋아요’와 댓글이 이어졌다.

“환기 않고 구우면 미세먼지 많아”
환경부, 금어기 해제 이틀 전 발표
고등어값 폭락해 어민들 항의하자
“민감한 때 발표는 판단착오” 물러서

그의 말대로 ‘국민생선’ 고등어가 2주간 수난을 당한 끝에 누명을 벗었다. 그런데 누명을 씌운 것도 누명을 벗긴 것도 환경부다. 이날 환경부 공무원들은 “고등어 논란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고등어구이에서 미세먼지가 많이 나온다는 자료를 민감한 시점에 낸 게 판단착오였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달 23일 낸 보도자료에서 “밀폐된 공간에서 조리 시 고등어구이에서 초미세먼지 주의보 기준보다 25.4배 높은 수준의 초미세먼지가 나온다”고 발표했다. 실내에서 조리할 때 미세먼지가 발생한다는 건 사실(fact)이다. 그런데 발표의 시점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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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환경부와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 등 4개 부처 실무자들이 미세먼지 종합대책에 들어갈 내용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던 중이었다. 환경부는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히던 경유차를 억제하기 위해 경유값 인상을 요구했지만 기재부와 산업부는 ‘증세 논란’ ‘산업계 위축’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이런 와중에 환경부의 발표는 고등어가 미세먼지 발생원 중 하나라고 지목한 셈이다. 또한 이때는 1년에 한 차례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고등어잡이를 금지하는 고등어 금어기(禁漁期·4월 20일∼5월 25일) 해제를 코앞에 뒀다.

금어기 마지막 날인 지난달 25일 미세먼지 대책을 조율하던 관계 부처 차관회의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고등어의 수난은 절정에 달했다. 지난달 30일엔 ‘환경부가 고등어구이 등 직화구이 음식점에 미세먼지 저감시설을 지원하는 대신에 직접 규제에 나선다’는 언론 보도마저 나왔다. 하지만 환경부는 “연구 용역을 준 것은 맞으나 고기구이 음식점에 대해 미세먼지 배출허용기준 마련을 결정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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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수산물 코너의 고등어. 고등어 가격은 환경부 발표 이후 20% 정도 하락했다. [사진 오상민 기자]

대형선망수협, 부산공동어시장 등 부산 지역 고등어 조업 및 유통단체가 이달 3일 세종시 환경부를 방문해 “환경부 발표로 고등어 소비가 위축되고 가격이 떨어졌다”고 항의했다. “환경부가 국내 미세먼지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발 미세먼지나 경유차 미세먼지는 놓아두고 엉뚱하게 고등어를 문제 삼는다”는 네티즌의 비판도 포털 사이트에서 쏟아져 나왔다.

결국 환경부는 해양수산부 등과 함께 6일 “고등어 가격 하락은 금어기 종료로 인한 생산량 증가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금어기 해제 이후 고등어 공급이 느는 것은 매년 반복된 현상이므로 고등어구이로 인한 미세먼지 탓은 아니라는 논리였다. 또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요리할 때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야 한다는 걸 알리려는 조사 결과 발표 취지가 고등어가 주범이라는 논란으로 비화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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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고등어가 기가 막혀…미세먼지 주범 오명 쓴 고등어 가격 하락



이번 고등어 수난은 정부 부처 내 환경부의 위상과도 관련이 있다.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는 “환경부는 공기·물·토양 이외에는 가진 게 없다. 결국 다른 부처에 대한 규제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부서인데 환경부가 기재부·산업부에 막혀 제대로 된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유값 인상, 경유차 진입 규제, 화력발전소 신설 규제 등은 환경부 소관 사항이 아니며 그나마 고기구이집 같은 생활 주변 배출원 규제 정도가 환경부가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힘없는 환경부에 힘없는 고등어가 수난을 당했다.

글=성시윤·강기헌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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