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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서울역 정초석은 일제 조선총독 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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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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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본관 앞의 정초석. [사진 민족문제연구소]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 앞에 있는 ‘정초석(머릿돌)’ 왼쪽 부분에는 ‘명치 42년 7월 11일 공작 이등박문(公爵伊藤博文)’이라고 쓰인 흔적이 남아 있다. 건물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 놓은 정초석 글씨를 누가 썼는지를 적어 놓은 것이다. 해당 글씨는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썼다.

연세대엔 태평양전쟁 찬양 탑도
“무조건 없애기보다 보존” 주장도

실제로 1909년 7월 13일 신문기사에는 이날 행사에 이토가 참석해 직접 정초석을 설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시민사회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책임연구원은 7일 “일제 시대 때 터널이나 주요 건물 등 기반시설을 건축하게 되면 조선총독급 인사의 글을 받아 정초석에 새기는 관행이 있었다”며 “당시에 만든 정초석 대다수가 사라졌지만 아직도 서울뿐 아니라 지방 등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지난달 민족문제연구소 회보 ‘민족사랑’에 실은 ‘조선총독들이 남긴 오욕의 흔적들-식민통치자들의 휘호가 새겨진 정초석과 기념비’라는 글에서 이런 내용을 전했다.

정초석은 서울역에도 있다. 옛 경성역사(京城驛舍)를 신축할 당시인 1923년 5월 20일에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의 글씨를 받아 만든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는 1927년 경성법원청사를 신축하면서 사이토 총독의 글씨로 제작한 정초석이 또렷한 글씨체로 남아 있다.

연세대 내 수경원 터에는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흥아유신기념탑(興亞維新記念塔)’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이 탑은 일본이 1941년 12월 연희전문학교에 서 있던 언더우드 교장의 동상을 철거하고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서울 마포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단지 진입로에 설치된 ‘선통물(善通物)’이라는 표지석도 이런 조형물 중 하나다. 이 표지석은 옛 물길인 선통물천(善通物川)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일제시대 때 조선총독이었던 우가키 가즈시게가 표지석의 글씨를 썼다.

이 연구원은 “식민시대의 잔재라고 무조건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며 “일제가 남긴 흔적도 우리 역사의 일부이니만큼 보존은 하되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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