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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또! 공사 중 안전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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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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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또?’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붕괴사고,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 최근 잇따른 안전사고 소식에 퍼뜩 나온 말은 이거였다. 장소와 피해자들만 달라졌을 뿐 수년째 보아온 사고들과 너무 유사해서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언론에 보도됐던 사고들과 이번 사고를 비교해 보았다. 역시나 유사한 패턴이 반복됐다.

#후진국형 인재(人災)=이번 남양주 참사는 밀폐된 공사현장에서 가스통 관리 부실로 가스가 누출된 상태에서 용접 작업을 하다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엔 울산 한화케미칼 공장에서, 2014년엔 고양 종합터미널에서 용접사고가 폭발과 화재로 이어졌다. 이들 현장엔 가스누출 탐지기, 화재경보기, 환기장치가 없었다. 스크린도어 수리 중 사망 사고도 지난해 강남역, 3년 전 성수역에 이어 세 번째다.

#똑같은 원인=모든 사고에서 원인은 ‘안전불감증’과 ‘위험의 외주화’로 분석됐다. 또 관(官)과 연관 있는 사고에선 ‘X피아’가 배경으로 지목된다. 공사현장에서 지켜야 할 안전매뉴얼은 선진국형이다. 하나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관리 감독 시스템은 가동하지 않았다. 안전불감증은 ‘위험의 외주화’ 결과로도 지목됐다. 원청업체는 대기업이지만 위험한 현장 공사는 다단계 하청으로 외주화하는 바람에 피해자들은 하청업체 비정규직 근로자다. 그들은 감독도 없이 위험한 현장에 그냥 내몰렸다. 안전을 희생해 아낀 재원은 기업 비용절감 혹은 ‘X피아’에게로 흘러간다. 이번 서울메트로는 ‘메피아’로 지탄을 받으면서 전 간부가 사표를 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애도와 의전=사고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사고 현장엔 반드시 그분들이 달려온다. 정치인·관료·지방자치단체장 등이다. 구의역 사고가 포스트잇 추모 등으로 사회적 애도 분위기가 확산되며 언론의 이목을 끌자 박원순 시장이 사흘 만에 달려와 “이번 사고는 민간위탁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작년에도 한 말이었는데 잊은 모양이다.

남양주 사고에도 높은 분들이 방문해 사진기자들 앞에서 애통한 표정으로 현장을 둘러봤다. 이 현장에서 완벽했던 건 의전뿐이었다. 높은 분들에겐 VIP가 새겨진 안전모가 제공됐지만 유족들은 제대로 안내조차 받지 못해 가족 시신을 찾아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맸단다. 지난 세월호 사고 당시엔 구조헬기가 기수를 돌려 구조현장을 보겠다는 장관과 해경청장을 모시러 가는 의전용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이런 높은 분들을 향해 시민들은 ‘아베만도 못한…’이라고 비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구마모토 지진 당시 관리들이 의전에 신경쓸까 봐 열흘 만에 피해 지역을 방문하고, 이후에도 해외 순방 일정을 늦추고 이재민들의 고충을 살폈다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대대적 안전점검과 말뿐인 안전대책=대형 사고가 나면 정부는 합동조사반을 만들어 대대적인 안전점검을 벌인다. 남양주 사고를 계기로 국민안전처는 정부합동조사반을 꾸려 7~13일 건설공사 현장의 안전관리실태를 점검한다고 밝혔다. 사고 후엔 늘 전수조사가 뒤따른다. 지난해엔 고양시 종합터미널 화재 1주년을 맞아 안전백서를 내고 유사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했다. 국회에선 안전의 외주화 방지 법안을 제출했다고 홍보만 하고 법안은 폐기했다.

#망각과 반복=안전사고는 잊혀지고, 매뉴얼은 현장에서 계속 무시된다. 서울메트로의 2인1조 작업수칙은 장부상에만 거짓 기록됐을 뿐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았다. 매뉴얼을 현장에서 지킬 수 없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책임 있는 분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고 당시 안전대책 마련을 다짐했던 높은 분들은 유사한 사고가 일어나면 또다시 똑같은 다짐을 반복한다. 이런 다짐은 현실화되지 않고 현장은 다시 망각 속에 빠지고 사고는 반복된다.

안전사회를 만들겠다며 국민안전처까지 신설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이렇다. 그렇게 안전사고는 우리 사회의 습관이 되고 있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