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헌금·적선도 분수껏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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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40대에 갓 접어든 가정주부가 팔의 마비증세로 입원했다. 이 마비현상은 부부싸움끝에 생긴 것으로 그 이유는 목소리가 고와 조그마한 교회성가대에서 열심히 활약하던 부인이 교회증축계획에 남편과 상의없이 분수에 넘치는 헌금을 약속한 것이 빌미가 됐다.
불황으로 장사가 잘 안돼 혼자 애를 태우던 남편의 화가 약속한 헌금액수에 폭발한 것이다.
교회헌금 랭킹1위인 중년주부가 저녁밥상에서 남편과 마주했다.
남편의 눈치를 살피다가 한참만에야 이번에 교회부흥회때 거액의 헌금을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신앙심이 깊은 남편이지만 이번에도 상의없이 큰돈을 약속한 것에 화가 치밀어 부인의 뺨을 갈겼다.
그후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한 부인은 사업관계로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볼때마다 『사탄아 물러가라』며 죄를 짓지말라는 설교를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언짢았지만 남편은 가정화목도 생각해 다음부터는 꼭 상의해서 하도록 약속을 받고 동의했다.
불사에 쓴다고 자식들의 형편도 생각지않고 거액의 돈을 절의 종을 만드는데 희사한 어머니도 있고, 보은미를 낸다고 가족 몰래 끼니때마다 한줌씩의 쌀을 빼돌리는 주부도 있다.
돈을 많이 내면 낼수록, 큰소리로 기도를 하거나 울부짖듯 소리내어 회개하면 할수록 큰 복과 위로를 받을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카타르시스와 기복사상에서 연유된다는 것이 어느 목사님의 설명이다.
남몰래 조리속에 넣은 헌금보다는 흰봉투에 이름을 쓴 헌금에 더 축복이 돌아간다고 믿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그 의를 행하지 말라』『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양심에 어긋나게 부정을 하여 돈을 벌거나, 힘들이지 않고 거금을 손에 쥐는 일부 복부인들이 번돈의 일부를 철없이 낭비하거나, 자선사업이라는 미명아래 써버리는 것은 배상심리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행위로 인하여 자신이 죄책감이나 불안을 느낄때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처음 행위를 배상할수 있는 정반대의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한가정의 주부가 가족들을 위한다고 혼자서 몰래 기복을 빌려다 가정불화를 일으키기보다는 보은미의 진정한 의미를 함께 나누고 온가족과 의논하고 그힘을 모아 헌금을 바치는 것이 가족 각자가 선을 행함에 더욱 힘쓴 것이 되며 다같이 축복받는 일일 것이다.
장학금으로 유학간 신학도가 목사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걸인에게 돈을 주자 목사님으로부터 그 돈이 자네가 번돈이냐고 호되게 야단맞았다는 얘기는 각자가 자기분수대로 행하지 않음에 대한 일침으로 우리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얘기다.
유계준<연세대의대 정신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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