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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서 부산 승리가 충청권 승리의 2배 효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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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호 5 면

1일 부산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이 정진석 원내대표를 찾아 신공항 심사의 공정성을 강조하자 2일 조원진(앞줄 왼쪽부터)·윤재옥·김상훈 등 대구지역 의원들이 정 원내대표를 만나러 가고 있다. [뉴시스]

영남권 신공항 부지 결정을 둘러싸고 서울 여의도 일대에선 이런저런 정계 개편 시나리오들이 돌고 있다.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중 어느 곳이 선정되느냐에 따라 정치 판도, 나아가 대선구도에 메가톤급 태풍이 휘몰아칠 것이란 얘기가 꼬리를 물고 있다. 우선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첫째는 영남권 신공항 부지가 밀양으로 결정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부산의 지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새누리당은 친박계 중심 정당으로 재편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입과 대구·경북(TK)+충청권 지역연합을 통한 정권 재창출론이 탄력을 받게 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새누리당의 굳건한 지지기반인 영남권에서 부산이 이탈할 경우 대선 경쟁 판도는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들 수 있다. 지난 총선을 통해 부산·경남(PK)에 교두보를 마련한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이 틈새를 비집고 부산 민심 공략에 본격 나설 가능성이 크다.


둘째 시나리오는 부산 가덕도로 선정되는 경우다. 이렇게 될 경우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토대인 TK 민심 이반이 일어날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으로선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친박계를 주축으로 한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가 흔들릴 수도 있다. 지금 여야 정치권의 눈이 온통 영남에 쏠려 있는 이유다.


#부산의 가치신공항으로 촉발할 수 있는 정계 개편의 종착역은 내년의 19대 대선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이 부산의 지지 없이 대선을 치른다면 승리할 수 있을까.


사실상 양자구도로 치러진 지난 세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부산 지역 1위 후보의 평균 지지율은 61.49%였다. 2002년 16대 대선 때 노무현 후보와 맞붙은 이회창 후보가 66.74%로 가장 높았고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도 59.82%를 기록했다. 2007년의 이명박 후보는 57.9%였다. 더민주 계열 후보가 받은 2위 득표율 평균은 27.72%였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받은 39.87%가 가장 높은 수치였다.


1~2위 간 격차는 평균 33.77%포인트다. 이를 가장 최근인 4·13 총선의 유권자 수와 투표율에 대입해 득표로 환산하면 55만2457표 차이가 난다. 부산에서 새누리당의 상대적 우세가 사라진다면 이 정도의 득표 우위도 사라지는 셈이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문재인 후보 간 전국 득표 차(108만496표)의 절반 수준이다.


같은 방식으로 충청권(대전·세종·충북·충남)을 대입해 보자. 지난 세 차례 대선에서 1위 후보의 평균 득표율은 47.63%, 2위 후보는 36.08%였다. 11.55%포인트 차다. 이를 4·13 총선 기준으로 환산하면 28만7642표 차가 된다. 부산과 비교할 때 26만4815표 적은 차이다. 단순 산술로 계산해 부산에서의 승부가 충청권 전체에서의 승부보다 2배 큰 임팩트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새누리당이 또 하나 생각해야 할 변수가 있다. 부산은 원래 새누리당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유지하느냐 잃느냐의 문제다. 충청권도 역시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우위를 점했던 지역이다. TK+충청 연합이나 반 총장의 합류로 새누리당이 충청권에서 기존 지분에 ‘플러스 알파’를 가져올 수 있을까.


1987년 개헌 이후 치러진 여섯 차례의 대선 중 충청권에서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54.24%)이다. 오랜 기간 충청도의 맹주 역할을 한 김종필(JP) 전 총리는 87년 13대 대선 때 충남에서 1위(45.03%)를 하긴 했지만 충북에선 13.52% 득표에 그쳤다. JP 이후 충청권 맹주로 꼽혔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맞붙은 97년 대선에서 26.88%,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결한 2002년엔 40.86% 득표에 머물렀다. 역시 충청도 출신 유력 대선 주자였던 이인제 전 의원 역시 97년 15대 대선 때 대전과 충북·충남 모두에서 20%대 득표에 그쳤다.


민간 정치 싱크탱크 ‘더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충청권에선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압도적인 스코어로 우위를 점한 후보가 없었다. 반 총장이 나서더라도 50%를 훨씬 넘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새누리당이 부산을 버리고 충청도와 손잡는다는 건 그야말로 단견(短見)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고민이 묻어난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역대 선거 결과를 놓고 볼 때 부산을 놓쳐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부산과는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들을 하고 있으니 궁여지책으로 충청+TK 연합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세연(부산 금정)·조경태(부산 사하을)·김도읍(부산 북-강서을) 의원 등 부산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최근 정진석 원내대표를 만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공항 부지 선정 심사) 용역이 공정성·객관성이 일부 무너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아직은 자제하고 있지만 공정성·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는 상황이 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짱을 놓은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 분열의 추억“요즘 신공항 이슈를 보고 있으면 97년 대선 때 생각이 자꾸 난단 말이야. 결국 그때처럼 되지 않을까 싶어.”


영남권 비박계 중진 의원의 말이다. 당시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는 외환위기로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김영삼(YS)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해 나갔다. YS는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그의 탈당은 제3후보로 나선 이인제 후보에 대한 우회 지원 논란을 낳았다. 그해 대선에서 YS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은 이인제 후보에게 29.78%라는 득표율을 안겨 줘(전국 평균은 19.20%) 여당의 패배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이후 여권에선 ‘이인제 학습효과’라는 말이 생겨났다.


신공항 부지 선정도 대선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폭탄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부산 가덕도로 결정될 경우에도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TK라는 핵심 지지기반의 이탈을 불러와, 임기 말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되고 새누리당의 원심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반 총장을 매개로 한 ‘충청-TK 연합’ 시나리오가 차질을 빚게 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반대로 밀양으로 결정될 경우 “더 이상 PK+TK 연합 정권은 없다”는 것이 새누리당 부산 쪽 분위기다. 이런 예측이 현실화되면 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TK)과 YS의 통일민주당(PK), JP의 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합당한 뒤 26년 만에 연합 해체의 위기에 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도 PK·TK 분열 위기는 몇 차례 있었다. 당내 주도권을 놓고 YS와 민정계가 대립했을 때 민정계 좌장이던 고 김윤환 전 의원이 ‘우리가 남이가’를 내세우며 YS 지지로 돌려세웠다. 97년 대선 패배 후엔 이회창 총재의 카리스마로 두 세력을 묶을 수 있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 때 공약한 영남권 신공항 부지 선정으로 지역 간 대립각이 첨예해지던 2011년엔 결국 MB가 ‘추진 중단’을 선언하며 ‘폭탄’을 뒤로 떠넘겼다.


윤태곤 실장은 “현재 박 대통령의 캐릭터는 삼성자동차 부산 유치를 결정하던 YS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YS는 집권 초기인 94년 부산과 대구가 경합하던 삼성자동차 부지의 부산 유치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이후 96년 치러진 총선에서 대구 지역 13석 중 신한국당은 2석만을 건질 수 있었다.


4·13 총선으로 영남, 특히 부산의 정치지형이 변화된 것도 신공항 전쟁의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새누리당의 텃밭이던 부산이 점차 야성(野性)을 키워 가고 있다는 점에서다. 19대 때 한 석뿐이던 더민주의 부산 의석은 20대 국회에선 5석으로 늘어났다. 야권 정당 총 지지율은 58.78%에 달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2006년 24.12%에 불과했던 야당 후보(오거돈) 지지율이 2014년엔 49.34%(오거돈)까지 뛰어올랐다.


정치컨설팅 업체 ‘민’의 박성민 대표는 “야당으로선 가덕도가 탈락하는 것이 유리한 구도”라고 말한다. 그는 “문재인 전 대표가 상당한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부산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나 중도세력 구축에 나선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부산에서 기회를 노릴 것이다. 역시 부산이 지지기반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대권에 도전하려면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민주가 가덕도 유치전에 뛰어든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문 전 대표는 4·13 총선 부산 유세 때 “부산에서 5석을 주면 박근혜 정권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신공항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더민주의 부산 의원 5명이 지난달 30일 긴급 회동해 신공항 가덕도 유치를 논의하기로 한 데 이어 더민주 부산시당은 8일부터 부산역 앞에서 천막을 치고 비상대책본부를 가동할 계획이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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