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구조조정을 위해 1000억원 이상의 추가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해외 선주가 “지금까지 밀린 1000억원 이상의 용선료(배를 빌린 비용)를 갚아야 잔여 계약기간의 용선료 조정 협상을 할 수 있다”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선주 “다 갚아야 용선료 협상”
추가자금 자체 마련 어려워 고민
“그룹차원서 지원” 목소리 커져
한진해운이 용선료에 발목을 잡힐 거라는 건 채권단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경영정상화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지난달 13일 제3의 글로벌 해운동맹인 ‘디얼라이언스(THE Alliance)에 가입한데다 19일에는 첫 사채권자 집회에서 회사채 만기를 4개월 연장했다.
그러나 지난달 하순부터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지난달 24일 컨테이너선주 나비오스가 용선료 체납을 이유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한진해운 배를 억류했다가 3일 만에 풀어줬다. 같은 날 한진해운이 캐나다 선주사인 시스팬에 138억원 가량의 용선료를 연체했다는 사실도 해외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러자 다른 선주들도 “체납 용선료를 갚지 않으면 앞으로 낼 용선료를 조정해 줄 수 없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채권단은 한진해운이 스스로 추가 자금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신청 때 이미 부산 사옥 매각 등을 통해 41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한다는 자구책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팔 자산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이러자 채권단에서는 대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 출연이나 한진그룹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경영권 포기각서를 쓴 조 회장에게 지원을 요구할 순 없지만 조 회장과 한진그룹이 자진해서 나서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과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을 지원할 경우 금호산업을 되찾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사례처럼 향후 경영정상화 때 주식 우선매수청구권을 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조 회장은 2013년 제수인 최은영 전 회장을 대신해 한진해운의 ‘구원투수’로 나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실 책임은 크지 않다는 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반면 법정관리 행까지 거론되던 현대상선은 경영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채권단은 용선료 협상이 다음주께 타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달 31일~이달 1일 열린 사채권자 집회에서는 8000억원 규모의 회사채에 대한 채무조정(50% 출자전환, 50% 2년 뒤 3년간 분할상환)도 가결됐다.
이제는 글로벌 해운동맹 가입을 타진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2일 서울에서 ‘G6(글로벌 주요 6개 선사) 해운동맹 정례회의’를 열어 운항에 대해 논의했다. 참여 선사 중 3곳(독일 하팍로이드, 일본 MOL·NYK)은 현대상선이 가입을 추진하는 ‘디얼라이언스’ 소속이다. 애초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이 이들 3개 선사를 만나 현대상선의 해운동맹 편입을 설득하려 했으나 선사들이 “실무 회의에서 정부 관계자를 만나는 건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면담이 취소됐다.
이태경·문희철 기자 uni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