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객부를 땐 "손님"이 무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한나라 문화수준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 공원·역·버스터미널·공중화장실·시장을 가보면 알 수 있다.
지방의 4∼5월마다 서는 「장」은 여행자에겐 한 눈에 그 고장 풍물과 인정에 접할 수 있어 흥미있고 정겨운 곳이기도 하지만 잡동사니 수도문화의 집합소인 서울의 거대한 시장들은 흐뭇한 인정보다는 각박한 세태를 통감케 해준다.
나는 시장가기를 두려워한다. 언쟁·고함소리, 때로는 육박전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그렇지 않더라도 이 안에서 쓰이는 말씨가 두렵다. 우선 노점상인을 단속하는 젊은 청년들의 거친 언동이 두렵고 다음으로는 사는 이나 파는 사람들의 말씨가 싫다.
새파랗게 젊은 여인이 길가 노점 할머니에게 『이거 얼마야? 왜 이렇게 비싸게 받어?』하는 투의 오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손님들에 대한 상인들의 말씨 또한 귀에 거슬린다.
『아줌마, 이거 사가. 싸게 줄게….』
이래서 나는 「아줌마」라는 호칭이 싫다. 이보다 조금 격이 높은 것은 양품점이나 옷가게의 여인들. 『어머니, 이리와 보세요. 어머니가 입으실 거예요?』 언제부터 「사모님」이어머니로 바뀌었을까. 할머니라 안 불러 줘 고맙지만 기분 좋을 리 없다. 차라리 어느 은행같이 「손님」이라 하면 어떨까.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눈물겹도록 소중한 호칭이상거래에 남용돼 될 말인가. 이는 「사모님」이라 부르기 싫어 생겨난 신조어인 듯하다. 허기야 사민의 끄트머리에 꼽고 「치」자를 붙였던 계급주의시대도 아니고 비단옷에 보석을늘이고 있는 부티나는 가게 주인들은 자신들이 사모님인지라 백화점이나 양장점으로 안가고시장옷을 사러 오는 여인들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이런데서 빚어진 용서 못할 이야기 한 토막.
몇해 전 어느 대학강사가 어떤 시장 의류상가에 여름옷을 사러 갔더란다. 높이 걸린 원피스가 마음에 들어 『좀 보여달라』해서 내려주기에 이리 저리 대보니 자신의 치수에 맞지않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돌아서는데 뒤통수에다 대고 퍼붓더란다.
『돈이 없으면 국으로 없다고 그러지. 제 주제에 이 비싼 옷을 어떻게 산담!』 참고로 말해두지만 그녀는 부군이 고급공무원이고 재력도 있건만 검소한 나머지 이 봉변을 당한 것이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상인의 얘기겠지만 「손님이 왕」이란 상도덕의 가나다도 모르는사람이다.
『아씨! 어서오십쇼!』『마님 나오셨습니까. 무엇을 드릴깝쇼!』
반세기전 서울토박이 상인들이 쓰던 말씨였다. 어즈버 그 시절이 꿈이런가 하노라.
김용숙<숙명여대문리과대학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