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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에 비친 「광복 40년」|사바사바·빽 정신적 대통령 떡고물·3김 개혁주도세력|세태의 흐름·변화를 풍자-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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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말은 시대의 거울이다. 말의 흐름은 해방 40년의 세태의 변화를 비춰준다.
해방의 거리, 감격은 잠시였고 신탁과 반탁이 분단의 벽을 높이는 신호가 됐다. 후줄그레한 38따라지도 뒷골목으로 가고 대로는 모리배라는 이름의 마카오신사가 어깨를 펴고 걷는 곳으로 변해갔다. 새 나라 건설이라는 모두의 꿈, 저마다의 일을 찾고 있는 곳에 동무들은세포를 침투시켰다. 이름하여 프락치, 국회 마저 남로당프락치사건에 휘말렸다.
정녕 8·15에서 6·25전란의 한복판까지는 혼란의 시대, 말들은 하나같이 그 어둠을 비춘다.
일본인도 가고 미군도 가고 내나라 내 정부에서 비로소 한국인은 높은 자리, 이른바 적산이라는 이름의 좋은 집, 그때로선 버젓한 공장, 돈벌이 할 자유천지가 왔는데 사바사바와 빽이 그 길에 이르는 수단- 그래서 전장의 병사가 총탄에 쓰러지면서 지른 외마디가 「빽」.

<아따라시이 있나>
폐허의 땅마저도 잃고 반도의 남단에 옹기종기 몰린 모두가 배고팠다. 양갈보가 양공주로,유엔사모님으로 격상되던 말의 변화는 미군물자에 매달려야 했던 허기진 세태를 말해준다.
워낙 경황 중에 6·25동란을 당해 그래도 한강을 건너 피난이라도 갈 수 있었던 사람은도강파가 되고 피난을 못 가 다락이나 토굴에 술어 적 치하를 넘긴 사람은 잔류파가 됐다. 가난한 나라 병사들이 소금기밖에 없는 그들의 급식 국물을 일컬어 황우도강탕이라 했다. 황소가 그냥 건너간 듯 멀건 국물이라는 뜻이다.
워낙 군대가 가난하니 스스로 경비를 조달해야했고 거기에 개인의 치부 욕까지 겹쳐 군 트럭들이 쌀과 나무와 탄피를 싣고 국도를 누비는 후생사업이 한때 유행했다.
전쟁과 가난은 성도덕을 앗아갔다. 오랜 유교적 도덕률이 무너지고 성이 상품화되면서『요즘 세상에 아따라시이 (숫처녀)가 어딨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귀하신 몸도 생생>
돈으로 살수있던 여성의 대명사가 깔치. 피난수도 부산의 자갈치시장에서 값이 쌌던, 그러나 그나마도 살 돈이 없던 피난민이 붙였음직한 이름이다.
전시의 혼란 통에 기차도 버스도 예정시간대로 운행이 안되었다. 약속시간에 늦기 일쑤였다. 그래서 생겨난 이름이 코리안타임.
충성의 눈물을 곧잘 흘리고 말끝마다 지당합니다를 연발해 낙루장관 지당장관이란 말이나온 아첨의 극치. 그래서 어느 장관은 높은 분의 방귀소리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했다는 풍설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3선 출마를 바라는 민의표시에 우마차까지 동원되어 50년대의 이 땅에 우의마의란 말이 생겨났다.
국회는 거수기로 전락하고 경무대의 양자를 모두가 「귀하신 몸」으로 모셨다해서 「귀하신 몸」이 유행어가 됐다.
그랬지만 마지막 남긴 유행어 『국민이 원한다면!』은 우리들 가슴에 향수로 남아있다. 「그때 그 사람」으로 막 내린 18년은 「구악일소」를 내걸고 한강을 건너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이름하여 5·16주체들.
구악을 감옥이 아니면 그네들 안방에 가두어놓고 온 누리에 「세대교체」 「체질개선」의바탕을 몰아왔다. 그랬지만 2년이 못 가 구악의 자리엔 신악이 들어앉았다. 신악이 빠찡꼬하러 워커힐로 새나라차를 몰고 간다면 그것은 주체들의 행차를 비꼰 것.
주체들이 내건 혁명공약중의 하나는 민생고해결-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기본식생활의 해결이 어려웠고 63년 봄 시골 어린이는 밥 대신 술도가의 술 찌꺼기를 얻어먹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책상 앞에서 꾸벅거렸다. 농촌에선 가을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논에 있는 시퍼런벼를 미리 팔았다. 이름하여 입도선매 그로부터 점심먹었느냐는 인사는 민생고해결했냐로통했다.
"자의반 타의반"
구악과 신악, 구정치인과 갓 옷 벗은 군 출신이 대결한 민정가도는 대통령선거사상 가장근소한 표 차로 승패를 갈라 대통령과 나란히 정신적 대통령을 탄생시켰고 그 여파는 정신적 ×장들을 양산했다.
자의반 타의반의 긴 여로에서 돌아온 제2인자는 민족적 민주주의로 화려한 재출발을 했지만 제2의 이완용도 불사하는 비장한 결의 탓에 민족적 민주주의만 간난이로 죽어 서울대문리대생들이 장송했다.
한일국교 정상화 후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동경으로 통했다. 일본차관 얻어 공장 지은사람들은 재벌의 터를 닦았다.
요란한 공업화 과정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도시로 이농현상이 일어났다.
조국근대화의 기치아래 지불보증-특혜금융-편파대출 등 새로운 경제용어가 양산되고 그 통에 벼락부자도 많이 탄생했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시동되어 수출에 불이 불었다.

<상아탑이 우골탑>
출세하려면 도시로 대학으로-그래서 시골청년들이 대학으로 몰리고 어버이는 출세할 아들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소를 팔아댔다. 이래서 이 땅의 상아탑은 우골탑으로 변신했고….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의 나라답게 외자의 홍수는 흥청거림을 수반했다. 서울은 일본인의 섹스관광지가 되고 기생파티는 현지처로 정착해 급기야 영자의 전성시대를 노래했다.
여자와 술과 돈, 먹고 마시며 돈 놓고 돈 먹는 도박단은 그때까지는 또 하나의 귀족놀음이었던 골프와 믹서해 핸디조정실로 불리고….
돈과 권력이 모든 것이든 사회-그래서 어용교수가 탄생하고 노동귀족이란 또 하나의 상류층이 생겨나면서 성장의 역군들을 공돌이·공순이로 떨어뜨리던 것은 화사했던 고도성장의 뒷그늘이다.
기업은 규모를 키워갔다. 일취월장 기업을 낳고 기업을 흡수해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너무급격하게 늘어난 것 때문일까, 사회는 이를 일컬어 문어발기업이라고 투정하기도 했다.

<7공자로 떠들썩>
그렇지만 하나같이 외자-공장-풍성함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마구 끌어다 쓰는데만 숨가빴던 기업들, 공장들이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부실기업. 정부가 수술을 해야했다.
문아발기업과 부실기업의 2중주 속에 풍요의 노래도 쉬임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작스레 넘쳐흐른 재화는 젊은 2세들을 유흥의 거리로 내몰기도 했다.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쾌락을 찾아 유흥가에서 연예가에까지 사냥터를 넓히던 7명의 젊은이 그룹이 있었고 세상은 그들을7공자로 불렀다.
국토의 중허리를 뚫어 고속도로시대가 열리면서 1일 생활권이란 밀이 나왔다. 재벌로 가는 길도 고속도로가 뚫리는 듯했다. 어느 날 갑자기 율산이 섰고 또 어느 날 야망의 젊은이가 수출드라이브에 편승해 5대양6대주를 제압하겠다는 제세의 닻을 올리자 선망과 놀라움과두려움이 뒤섞인 눈길들을 그와 그의 동료들을 무서운 아이들로 명명했다.
고속도로의 시대, 고속인간들이 줄달음질하는 대열에서 뒤쳐진 보통사람들- 그 속에서도 눈부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아」해도 「어」커녕 「아」를 알아듣는데도 한참동안 생각해야했던 순진한 사람들에겐 형광등이란 레테르가 붙었다.
돈은 정치에도 스며들고 선거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술이 넘실대던 선거의 거리, 국민학교 어린이들이 『우리 어머니에게 술대접 마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데모했다.

<부정선거 꼬집고>
외자를 끌어다줄 자리가 아닌 야당은 돈으론 경쟁이 안되었다. 그래서 등장한 전술이 마타도어고 흑색선전. A후보가 오늘 ××동에서 술판을 벌인다. 유권자 성향을 제나름으로 분석해 A·B·C급으로 나누어 돈 봉투를 돌리다 유권자에게 기대심리를 주었다가 실망을 안겨 괘씸한 ×, 내가 찍나봐라로 만드는 수법이다. 이름하여 타락선거- 야당이 타락선거를몰아치자 여당도 그렇다, 개탄할 일이다라고 맞장구쳤다. 야당이 말한 건 돈의 선거고 여당이말한 타락은 마타도어였지만….
근대화의 물결은 행정만능을 낳고 정치는 행정에 눌려 뒷걸음질했다.
돈과 권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재단했다. 갑작스레 거대해진 사회는 권력의 통제, 행정의 조정거리를 늘려놨다. 그래서였는지 주체들이 만든 기구가 모든 분야의 최종통제와 조정을 전담한다고 했다. 그 시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나선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가죽점퍼의 안내를 받은 모 기관에 갔다온 것이다.
모기관은 정치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이른바 정보정치- 돈과 정보정치가 야당가에 사꾸라를 꽃피웠다. 사꾸라논쟁은 야당가에 몇차례고 정치파동을 몰아왔다. 그 파동은 여야의 가파른 대결로 연장되기 일쑤였고 귀찮아진 여당은 국회소집을 기피했다. 국회는 되도록 열지않는 것이 좋고 떠들썩한 사회문제나 중요한 정치문제가 생기면 그럴수록 국회열기를 기피했다. 국민이 필요로 할 때 안 열리는 국회. 그래서 국회의원은 애 보는 사람으로 불리게 됐다.
단군 이래의 지도자로 불린 박대통령 3선의 명분은 중단 없는 전진- 조국근대화를 민족중흥으로 전진시켰다.
균형국회가 애 보는 사람에서 못 벗어나던 때 검사와 판사의 다툼, 이른바 사법파동이 객고풀다의 질 낮은 논쟁을 벌여 우리를 슬프게 했다.
소비가 미덕이 될 풍요의 80년대를 예고해 바캉스를 보통사람의 일상어로 만들어 향락산업의 터를 닦았지만 그것은 유신으로 가기 위한 마취제.
극성을 부리는 사채를 뿌리뽑는다고 느닷없이 대통령긴급명령으로 사채를 동결했다. 이름하여 8·3조치. 그러나 소기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국력의 조직화·능률의 극대화를 내걸고 유신체제가 출범했다. 3권분립은민주주의의 고전, 그래서 대통령은 3권의 조정자로 군림했다. 애 보는 사람들에겐 동반당선의 길이 열렸지만 의원이면서 금메달·은메달로 나뉘고 6년짜리와 3년짜리로 격을 갈랐다.
사회 모든 분야를 권력의 울타리에 가둔 유신체제에서 언론이라 해 예외일수 없었다 알아야하고 알고자하는 국민의 수요에 맞춰 카더라방송과 유비통신이 새로운 언론매체로 각광을받았다.

<삼청교육의 돌풍>
모기관에서 거짓말을 강요당했다해서 양심선언이 나오고 캠퍼스에서 쫓겨난 학생들이 공장에 나가 해머를 들고 그래서 오늘 학생데모가 학원사태로 되고 위장취업이란 기이한 낱말이 나오게된 씨가 자라고 있었다.
한다면 합니다던 사람이 한 시대를 막 내리게 하고 간 뒤 반짝한 3김시대.
묻혀져온 권력형 부정에 화살이 가자 떡고물 안 묻히고 떡장사를 어찌하느냐는 명언이 나온 것도 이 시절.
12·12와 5·17파동을 치르면서 개혁주도세력이 진군했다. 조국근대화는 선진조국에 자리를 바꾸어야 했고, 구시대가 새시대로 대칭 되어 과거의 길서는 부정당했다.
새시대를 향한 정지작업의 하나 삼청교육대는 관가에 한정했던 서정쇄신을 확대한 사회정화의 푸른 신호. 모든 분야가 새 시대 새 질서를 향해 진통했고 큰손이 은행을 휘청거리게해 정의사회가 정리사회로 희화화됐다.
오랜 인플레의 심리를 뿌리뽑는다고 물가·환율·금리·곡가 등을 모조리 묶는 저자정책이 이 시대 경제의 주류를 이루고 실명제시도가 한 파동을 일으켰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중대로 구분되던 정당에 피조라는 관사가 붙고 그 반작용으로 지각 출범한 자생야당이 선거바람을 만들었다. 그 여파로 정치의 거리에 장내와 장외가 등장해 가파른 대결로 밀려가고….
그 어느 시대 도둑촌으로 불리던 호화주택의 너머에 있는 달동네는 해방촌→판자촌을 계승한 것. 그런 그늘지대가 없어지는 날이 정의사회 구현의 날이 될까.

<이영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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