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1)묵살된 건의-제83화 장경근 일기(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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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0년3윌4일>
기획위원회의 결정은 일단 신문에 반영되었다. 자유당은 성명을통해 민주당의 소위 부정선거 지령 폭로라는 것이 사실에 근거했다면 증거를 제시하라. 민주당측 폭로가 정보에 의하면…라는 문구를 사용한것만 봐도 근거없는 자작임을 알수있지 않은가라고 반격했다. 최인규내무도 선거는 자유당에 유리한데 왜 무리를 하겠는가. 만약 부정선거지령을 한 사실이 있다면 나는 즉시 물러나겠다면서 진상을 조사해 흑백을 가리겠다고 했다.
이런보도를 보는 내마음은 편치않다. 사태수습은 이렇듯 강경한 부인성명에 있는것이 아니고 지체없이 지령을 비밀리에 취소하는 일인데 그런 단안을 내릴것같지 않아서였다.
오늘 기획위원회는 지령문 여파로 모두들 말이없어 일찍끝났다. 회의를 끝낸길로 나는 이기붕의장을 찾아갔다. 내가 이의장을 찾은것은 최내무나 한희석위원장이 부정선거 지령을 춰소하겠다는 약속을 지킬지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의장에게 기획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은 한위원장한테서 보고받았을줄 알지만 일이 중대하고 최내무의 그간의 자세로 미루어 부정선거지령을 선처하겠다고 한약속을 지킬지가 염려되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의장은 아무말 없이 듣기만했다.
나는 이의장에게 나의 생각을 설명했다.
△내무부의 비밀지령문은 전국적이고 공개적인것으로 자유당이 승리한다해도 선거의 승리라 할수없다 △이번선거는 민주당의 조병옥대통령후보가 사망해 자유당의 대통령후보는 단일후보나 러닝메이트인 이의장은 그 잇점이 있는데다 민주당 구파는 선거열의가 없어 승산이 높다 △최내무의 부정선거 계획은 국민이나 야당은 말할것도 없고 자유당 기획위원 대다수와 소속의원이 모두 반대한다 △정부통령선거에서 부정선거를 하게되면 내후년의 국회의원선거때 국민의 반발을 산 자유당은 참패하게 될 것이다. 국회의 과반수의석도 얻지못하고 국민의 신망과 지지를잃은 정당이 되어서야 어떻게 정국을 이끌어갈 것인가. 더우기 이의장의 부통렴당선을 위해 자유당소속의원의 다음선거를 희생시켰다는것 때문에 이의장을 원망하게 되어 당을 분열시킬 우려가 있다 △백보를 양보해 선거부정이 부득이한 것이라 해도 이미 그 내막이 사전에 폭로된이상 이를 강행할 경우 선거없이 당선을 선포하는 것과같아 국민감정이 용납치 않을 것이다 △내무부의 과잉행동은 자유당이 쌓아올린 업적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 무모한계획이다.
이런 요지로 부정선거 지령의 부당함을 역설했다. 특히나는 내선거구를 포함해 내가만난 자유당 의원들이 모두 이의장의 다수득표를 낙관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의장께서 최내무를 불러 비밀지령 취소를 명령하라고 간곡히 진언했다. 나는 여기서 덧붙여 이의장이 특명으로 부정선거계획을 취소하게 한다면 민심에 좋은영향을 주어 선거에서도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의장은 최내무와 의논해 선처하겠다고 했다. 취소시키겠다가 아니라 선처하겠다는 대답이 불만스러웠지만 어쩌랴. 최근 신병이 깊어진이래 중대기로에선 항상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위의 그릇된 충성심에 끌려가던 전철을밟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지울수가 없었지만 피로와 근심에 묻혀있는 의장에게 더 할말도 없어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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